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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사과가 가져올 강원의 미래

박선이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겸임교수

지난 주말 정선을 다녀온 친구가 임계 사과를 사왔다. 고랭지 배추밭 구경하러 갔던 길인데 뜻밖에 새빨갛게 사과가 익어가는 것을 보고 왔다며 “아니 강원도 정선에서 사과를 해???”하고 신기해한다.

참, 세상 변한 거 모르시네? 2030년까지 강원도가 전국의 사과 재배면적 10%를 차지하게 될 거라는데? 홍천은 사과 축제를 9년째 열고 있고, 영월, 평창, 태백, 양구에서도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고요! 인제에 귀향해 살고 있는 지인 한 분은 빨간 사과 사진을 sns에 올리며 매일 자랑이라고요

강원도 사과의 비밀 아닌 비밀은 기후변화다. 지난해 사과 작황이 나빠 사과 한 알에 1만원이 넘는 금사과 파동이 나면서, 정부는 지난봄 ‘국민 과일’ 사과의 북방정책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과 주산지는 경북(대구에서 한참 올라 왔다!)인데, 봄철 이상 고온과 여름철 폭염·폭우 같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해마다 불안을 겪어왔다. 지난해 금사과 파동만 해도, 초봄 날씨가 지나치게 따뜻해서 사과나무에 꽃이 일찍 폈고 꽃샘추위에 그 꽃이 다 떨어져 버린데서 출발했던 것 아닌가. 강원도 산지라고 언제까지 서늘하겠나 걱정도 되지만 ‘강원 고랭지 사과’가 당분간은 사과 안심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을 듯도 하다.

현재 강원도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정선과 양구로, 각각 258㏊에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홍천이 185㏊로 그다음, 영월이 145㏊, 평창이 85㏊(이상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로 뒤를 잇는다. 정부는 이를 2030년까지 정선과 양구는 500㏊, 영월과 홍천은 400㏊, 평창은 20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불과 6년 후 2배 이상 팽창하는 셈인데, 달콤한 임계 홍로를 한 입 베물며 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 사과가 생필품도 아니고, 기호 식품인데, 생산지를 넓히면 다일까? 사과 대신 다른 과일을 선택할 수도 있고, 사과도 하나의 문화이자 상품인데, 그 준비는 되어있는 것일까?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가 계셨을 정도로 사과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과일이다. 하지만, 소비자를 매혹할 이야기가 없다면 강원도 사과는 일류가 되기 쉽지 않을 터이다. 강원도 사과 중 문화적 접근을 제일 먼저 시작한 홍천 사과 축제의 지난해 행사 내용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과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중 굳이 ‘백설공주’의 독사과를 가져와야 했을까?

퇴계이황종가의 불천위 제사상에도 오르는 사과는 사실 조선 후기에 들어온 외래종 과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 사과는 1900년 미국인 선교사 존슨이 대구 남산동에 사과나무를 들여와 대규모 사과 농사를 시작한데서 유래했다. 국광, 홍옥에 이어 부사가 오랫동안 인기였고 요즘은 아삭한 식감과 단맛이 강한 홍로의 인기가 뚜렷하다. 노란 사과 시나노 골드, 파란 사과 아오리 같이 개성이 강한 사과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과를 생과일로 먹는 외에 별다른 음료나 음식이 없다. 그만큼 사과와 관련한 문화적 요인들을 발전시킬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강원도 사과를 단지 기후 변화에 대응한 농업정책의 산물로 볼 것이 아니라, 강원도의 힘으로 키워보면 어떨까. 사과 과수원을 무작정 늘리기 전에 사과문화센터도 함께 짓고 사과를 모티브로 한 문학 작품, 미술 작품을 경험하게 해보면 어떨까. 사과주 칼바도스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키운 것은 소설 ‘개선문’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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