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대한민국 군을 ‘이용당한 피해자’로 만드나
대한민국의 군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국가 안보의 마지막 보루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12·3 비상계엄 당시의 사건과 김현태 특전사 제707특수임무단 단장의 기자회견은 군 내부의 깊은 병폐와 지휘 체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 단장은 지난 9일 부대원들을 “무능한 지휘관의 지시를 따른 피해자”로 규정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리고 시종 울먹였다. 그의 발언은 책임 있는 지휘관의 자세를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군대의 신뢰와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연 어떤 시스템과 리더십이 군을 이토록 무기력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는가? 또 어떤 연유가 신원이 기밀에 해당하는 국군 최정예 특수부대의 지휘관이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게 만들었는가?
개인 잘못 치부해서는 안돼
12·3 비상계엄 당시 707특임단은 국회의사당에 투입돼 건물을 봉쇄하고 물리적 충돌을 감행한 계엄군 중 하나였다. 김 단장은 해당 작전에서의 모든 지휘가 자신의 책임임을 강조했지만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 없다. 군은 계엄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법적, 윤리적 한계를 명확히 준수해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당시 707특임단의 행동은 군 내부의 지휘 체계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권위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김 단장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부대원들은 상부의 지시를 이행했을 뿐인데 그 대가로 비난과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다. 이는 단지 지휘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군 조직의 구조적 문제와 부적절한 명령 체계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군대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조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군 내부의 책임 회피 문제다. 김 단장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겠다고 했지만, 그의 발언은 더 큰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려는 다른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지휘관 한 명이 책임을 진다고 해 조직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둘째,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점이다. 비상계엄 당시 군은 국민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행동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셋째, 군 내부의 사기 저하와 부대원들의 사후 관리 부족이다. 김 단장은 부대원들이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용서를 구했지만, 그 피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다. 부대원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그로 인해 사회적 비난과 내부적인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 군의 명예와 사기는 단순히 구호나 의례적인 선언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군이 정치적 도구 돼선 곤란
군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계엄령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도 군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한정돼야 한다. 지휘관의 명령이 잘못되었을 때 이를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상명하복이라는 군의 특성이 때로는 필수적이지만 부당한 명령을 걸러낼 수 있는 내부 감시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군 부대원들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도구가 아니다. 부당한 명령으로 인해 부대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전 교육과 사후 보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심리적 지원과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부대원들의 정신 건강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 단장의 발언은 비록 개인의 자책으로 끝날 수 있지만, 이를 계기로 군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군의 사기는 단순히 전투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명예의 문제다. 군의 특수한 작전과 상황이라는 타령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개인에게 군 시절은 젊음의 이야기가 벌어지고, 성장이 이뤄지는 시기다. 그런데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자부심 대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거나 어떤 작전인지 모르고 투입되었다가 돌아온 외계인처럼 느낀다니, 그게 대한민국 군의 초상일수도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