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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초졸 공장 소년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

[이재명 대통령 그는 누구인가]
흙수저에서 대통령까지, 파란만장한 여정

◇1978년 고입 검정고시 시험 응시원서 사진.

"나는 이재명입니다"

단호한 어조와 정면 돌파형 리더십, 그리고 극명한 아군·적군 구분의 정치 스타일.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서사를 써온 인물 중 하나다.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인권 변호사를 거쳐 광역단체장을 역임하고, 마침내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그의 정치 행보는 '사이다 정치'로 대중의 환호를 받았지만, 동시에 숱한 논란과 의혹 속에 놓여 있기도 했다. 이재명의 삶은 날 선 대립과 반전, 위기 속 선택과 행동으로 점철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어린시절. 1980년 성남으로 이사온 지 4년 만에 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가족들과 밥 나누어 먹는 장면을 셋째 형님이 촬영한 사진.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어린시절 가족사진

■ “배고픔이 만든 의지, 상처가 키운 결단”=이 대통령은 1963년 경북 안동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7남매 중 다섯째. 아버지는 대학 중퇴 학력이었지만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고, 가족은 생계를 위해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13살에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도왔고, 프레스 사고로 팔을 다치는 부상도 겪었다. “사람보다 기계가 중요했던 시대였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그였지만, 공장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목격한 그는 독학을 결심했다. 퇴근 후 밤늦도록 책을 붙잡은 끝에 4년 만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두 차례 극단적인 시도를 할 만큼 절박했던 그 시절에 대해 그는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법률사무소 운영 당시 사진.

■ “정의감이 이끄는 길…법조인이 아닌 인권 변호사로”=대학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공장 시절 '폭도'라 들었던 시민들이 사실은 국가폭력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그는 대형 로펌 대신 성남 한복판에 인권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성남 참여연대를 조직해 고급 아파트 특혜 분양을 폭로하고, 유서깊은 공사 반대 운동 등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 사칭, 음주운전으로 전과가 남았지만 그는 “당시는 정당한 시민운동조차 억울하게 처벌받던 시대였다”고 해명했다. 다만,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명백한 잘못임을 인정하며 공개 사과했다.

◇2016년 성남시의료원 창립 현판식 모습.

■ “시민운동의 한계를 넘어서…정치의 문을 두드리다”=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이 좌절되자, 그는 “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라며 스스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고, 2010년 세 번째 도전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호화청사 논란’에 휘말린 전임 시장을 정면 비판하며 반부패 이미지를 구축했고, 시장실을 시민에게 개방하며 시정의 투명성을 강화했다. 시 채무 7,000억 원 이상을 감축했고, 청년배당 등 복지정책도 추진했다. 이에 대한 ‘현금 퍼주기’ 비판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청년들로부터는 호평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성남의 사이다'로 불렸다.

■ 전국적 주목…“쪼개지 않았습니다!”=2014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새누리당 의원에게 “실실 쪼개지 않았습니다!”라고 응수해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SNS를 통한 소통과 솔직한 발언은 정치 혐오층까지 포용했다. ‘고구마 같은 정치’에 지친 국민에게 그는 시원한 ‘사이다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 ‘형수 욕설’ 사건이 알려지며 이미지에 균열이 생겼다. 셋째 형의 정신질환과 가족 간 갈등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2019년 경기도지사 재임시절 계곡 불법영업 현장 점검 모습.

■ 촛불과 함께 부상…성과와 의혹의 이중주=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그는 가장 먼저 하야를 외친 정치인이었다. 촛불집회에서의 선명한 메시지는 그를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시켰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도지사 재임 시절 그는 계곡 불법 영업 철거, 대기업 갑질 근절, 코로나19 선제 대응 등 강한 추진력 있는 정책으로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김부선 스캔들, ‘혜경궁 김씨’ 트위터 논란, 조폭 연루설 등 끊이지 않는 의혹과 공세에도 시달렸다.

■ 위기의 순간…대법원 판결이 생명선=2020년, 이 대통령은 형 강제입원 관련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당시 도지사직 상실 위기까지 갔으나, 대법원은 “토론회 발언의 맥락상 허위성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그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되살리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 대장동 개발 의혹…위기 속 복원력=민주당 대선 경선 중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이 터지며 정국은 격화됐다. 민간사업자 화천대유가 6,000억 원대의 이익을 얻은 것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이어졌고, 곽상도 의원 아들의 고액 퇴직금 사건으로 공방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 대통령은 “민간이 위험 부담을 지고, 공공이 이익을 환수한 모범 사례”라고 반박했다. 위기 속에서도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정치인으로서의 회복력을 증명했다.

◇2024년 12월4 새벽 1시 40분 계엄선포는 명백한 위헌, 불법임을 밝히는 선언기자회견 모습.

■ “계엄을 멈춘 국민, 내가 본 진짜 민주주의”=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그는 유튜브 라이브로 “국회를 지켜달라”고 호소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여의도에 모여 계엄군을 막아섰다.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고, 정국은 탄핵 정국으로 전환됐다. 그는 이 상황을 ‘한국 민주주의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 대법 파기환송…파기환송심 일정 연기=2021년 대선 국면에서, 고(故) 김문기 전 처장 관련 발언과 백현동 용도변경 관련 발언으로 이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2025년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심 판결이 법리를 오해했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정치에 개입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6월 18일로 연기했다. 재판부는 “대선 후보에게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1990년대 중후반 인권 변호사 시절 어느 토론회장에서 찍은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공원 마지막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뒤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제 국정 최고 책임자로…“불가능을 넘은 정치인”=이번 대선은 과거와 싸우며 현실을 바꿔온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극적인 승부처였다. 그는 ‘흙수저’ 출신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득권에 도전했고, 논란과 위기를 정면 돌파한 끝에 마침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제 그는 대통령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을 이끌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시작한다. '대통령 이재명'이 어떤 시대를 써내려갈지, 국민의 눈과 귀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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