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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70년 모아놓은 재산이 싹 날아갔는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막막"…집 불타고 단전·단수에 통신두절 속출

안동시 일직면, 남선면, 길안면, 임하면, 남후면, 임동면, 풍천면 수돗물 끊겨
이재민 "바람 타고 눈앞에 불길이 날아다녔던 그날만 생각하면 정말 무서워"
약국·병원 문 닫고, 먼곳까지 갈 여력도 안돼…"일상 멈춘 주민들 도움 절실

◇27일 안동시 길안면 구수2리 피해 모습. 2025.3.27 사진=연합뉴스

"집이 불에 전부 타 대체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겠는지 막막합니다"

지난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엿새째 경북 북동부지역으로 확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집과 생활 터전을 잃은 채 장기간 불편한 대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다행히 화마가 비껴간 지역 주민은 빗발치는 대피 안내 문자를 보며 불길이 닥칠까 걱정과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27일 지방자치단체와 소방·산림당국에 따르면 안동에서는 산불로 인한 짙은 연무와 단전·단수, 교통 통제까지 더해져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산불로 가압장에 전기 공급이 끊겨 일직면, 남선면, 길안면, 임하면, 남후면, 임동면, 풍천면 일부 지역에는 이틀째 수돗물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는 비상 급수와 병물을 지원하고 있으나 일상생활을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일직면, 남선면, 길안면, 임하면, 임동면 2천487호는 정전됐다가 전날 대부분 복구됐으나 177호는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안동시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만난 전(72)모씨는 체육관 2층에 올라 텐트가 설치된 아래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는 이번 화재로 한평생 떠나본 적 없는 집을 잃었다.

◇27일 안동시 길안면 길안중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쪽잠을 자는 주민. 2025.3.27 사진=연합뉴스

이틀 전인 지난 25일 오후 5시께,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넘어와 전씨의 집이 있는 안동시 길안면까지 덮쳤다.

마을에서는 대피방송이 나왔고, 전씨는 시청 공무원을 따라 이곳 체육관으로 왔다.

하룻밤 뒤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채비하는데 먼저 도착했던 이웃으로부터 "전씨 집이 타버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씨는 "집에 가보니 정말 잿더미가 됐다. 집 주변에 거름을 주려고 콩 껍질을 놔뒀는데 거기에 불이 붙었던 건지 불길이 집을 덮쳤다"며 "마을 중에서 우리 집이 가장 피해가 크다. 대체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겠는지 모르겠다"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웃집에 지내면서 아직 타지 않은 사과나무 가지치기라도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싶은데 이웃집에 물이 없어 생활할 수가 없다"며 "집 앞에 둔 농기계 몇 개만 남았다. 70년 모아놓은 재산이 싹 날아갔는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비슷한 시각 안동체육관으로 온 박(66)모씨 부부는 이틀 전 '가작히'('가까이'의 경상도 방언) 불이 다가왔던 그날의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의 집 역시 이틀 전 오후께 불길이 덮쳤다. 퇴직 후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퇴직금을 모아 산 집이었다.

테라스까지 갖춘 규모가 큰 집이었는데 기름칠이 된 테라스의 데크가 오히려 불쏘시개가 돼버릴 줄은 몰랐다.

◇경북 북부 산불이 엿새째 이어지고 있는 27일 오전, 안동시 운흥동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한 어르신이 뒷짐을 진 채 이동하고 있다. 2025.3.27 사진=연합뉴스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는 박씨를 대신해 그의 아내가 옆집에서 물을 끌어다가 열심히 불을 끄려고 고군분투했으나, 불은 집을 다 태우고서야 3시간 만에 멈췄다고 했다.

박씨는 "멀리 산에서 불이 났길래, 어떻게 해야 하나 보고 있었는데 10분 만에 불이 가작히 오더니 집으로 붙었다"며 "지하수가 나오는 옆집에서 물을 끌어다가 불을 막 끄려고 했는데 도저히 잡히질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 달 전 뇌실에 물이 차는 '수두증'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자꾸만 허리가 저리고 어지럽지만 당장은 대피소에서 머무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을 찾질 못했다.

그는 "다행히 타지 않은 창고에 텐트와 이불이 한 채 있어 불편하더라도 창고에 있고 싶은데 안전한지를 모르겠다"며 "불이 정말 무섭다. 바람을 타고 눈앞에서 불길이 날아다녔던 그날만 생각하면 정말 무섭다"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남편과 함께 산다는 서모(83) 어르신은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라고 애써 마음을 먹었다"며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놓이지 않아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대피할 수 있게 옷가지 몇 개를 챙겨 두었다"고 말했다.

◇27일 경북 청송군 서산영덕고속도로 청송휴게소(영덕방향)가 산불에 폐허가 돼 있다. 2025.3.27

주민 안모(65)씨는 "속옷도 한 장 못 챙겨서 나왔는데 다시 집에 가보니 다 불타 아무것도 없었다"며 "상황이 길어지는데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근수 길안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은 "속옷, 치약 등 필수적인 구호품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긴급구호키트 등을 받았지만 대피가 장기화하면서 추가적인 보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대피소가 생기다 보니 비교적 규모가 작은 대피소까지는 구호 물품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길안중학교는 강당이 좁아 구호용 텐트를 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은 사생활 보호도 안 되는 차가운 바닥에 매트와 이불을 깔고 생활하고 있다.

일부 어르신들은 자다가 추워서 깨기가 일쑤였다고 말했다.

의료품과 의료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피소에 머무는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인데 혈압약 등 긴급 의약품도 집에 있거나 불에 타 사라진 상황이다.

주민들은 대피소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어 이동이 힘들거나 아직 산불이 계속되고 있어 쉽게 다시 마을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약국이나 병원도 문을 닫은 곳도 많고 먼 곳까지는 갈 여력도 안 돼 긴급 처방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민들은 전했다.

◇27일 경북 청송군 서산영덕고속도로 청송휴게소가 산불에 폐허가 돼 있다. 2025.3.27 사진=연합뉴스

영덕에서도 지난 25일 오후 5시 54분께 청송군 신촌면 산불이 지품면 황장리로 넘어와 초속 25m 이상의 강풍을 타고 해안까지 휩쓸면서 단전과 단수가 속출했다.

지품 정수장이 불에 타고 영덕 정수장 전기가 끊겨 달산면 전 지역과 지품면 일부, 매정 2·3리, 삼계리 등에 수돗물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또 변전소 정지로 25일 오후 9시 6분께 관내 전 지역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가 대부분 복구됐으나 지품면 등 산불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는 아직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도 있다.

영덕은 25일 밤 10시부터 통신이 두절됐다가 다음 날 새벽에 대부분 다시 개통됐으며 피해가 심한 지품면 일부에서는 다시 휴대전화에 장애가 발생했다가 정상화되기도 했다.

영양군 입암면, 청기면, 석보면 지역도 정전이 발생했다가 복구됐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에 폐허가 돼 있다. 2025.3.26 사진=연합뉴스

도로 통제와 해제가 반복하면서 이동도 여의치 않다.

서산영덕고속도로 청송휴게소 건물이 불에 타 동상주 나들목(IC)∼영덕 IC 구간 양방향과 중앙고속도로 의성 IC∼풍기 IC 구간 양방향 통제가 이어지고 있다. 또 안동 임동면 마령리 마령교 삼거리에서 영양 입암면 산해리 산해 교차로를 연결하는 도로가 26일 오후 3시 45분부터 통제 중이다.

안동 길안면 천지리∼길안면 배방리 지방도 차량 통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외에 국도와 지방도, 군도 8개 구간과 일부 철도 노선은 통제됐다가 통행이 재개됐다.

이번 산불로 인한 경북도내 대피 인원은 3만3천여명으로 이 가운데 1만5천400여명은 여전히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 2천448개소와 공장 등 건축물 2천572개소·2천660동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산불 발생 이후 6일째로 접어들면서 대피소 생활에 지친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 확보도 시급한 상황이다.

시민들도 쉬지 않고 오는 재난 문자에 긴장의 연속이다. 또 어디로 대피해야 안전한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산불로 인한 연무에 미세먼지까지 짙어져 마스크를 껴도 메케한 냄새로 일상생활에 제약받고 있다.

◇27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에서 밤새 번진 산불로 무너진 가옥 앞에 불에 탄 농기계가 세워져 있다. 2025.3.27 사진=연합뉴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인명피해는 사망 27명, 중상 8명, 경상 22명 등 총 57명으로 집계됐다.

권역별로 보면 경북이 사망 23명, 중상 3명, 경상 16명 등 42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남은 사망 4명, 중상 5명, 경상 4명 등 13명이었고 울산에서는 경상 2명이 나왔다.

주민 대피 인원은 이날 오전 5시 기준 3만7천185명이었다. 이중 산불 피해가 가장 큰 의성·안동에서만 2만9천911명이 나왔다. 대피했다가 귀가한 주민은 2만485명,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은 1만6천700명이었다.

이날 오전 5시 기준 진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대형 산불 지역은 모두 10곳이다. 피해 산림면적은 3만6천9㏊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면적 2만3천794ha를 1만ha 이상을 넘어선 것이다.

지역별 진화율을 보면 산청·하동 77%, 의성 54%, 안동 52%, 청송 77%, 울산 울주 온양 76%다. 의성에서 난 산불이 확산한 영덕은 10%, 영양도 18%에 그쳤다.

울주 언양과 경남 김해는 진화가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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