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길’은 때로 너무 짧거나, 너무 구불거리거나, 아예 이어지지 않기도 한다. ‘단종의 길’이 그러했다. 왕위에 오른 지 겨우 2년,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고, 열여섯 짧은 생애의 끝은 유배지 영월 청령포였다. 역사적 패배자로 남은 그의 삶은 조선 왕조의 가장 비극적인 기록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제 그 단절된 길을 잇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장릉과 청령포, 삶의 마지막과 죽음 이후가 마침내 하나의 길로 연결된다. ▼‘장릉~청령포 연결로’라는 이름은 어쩌면 다리 없는 강 위에 한 줄기 사잇돌을 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월의 땅에 새로 놓이는 이 길은 단종이라는 존재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다시 걷는 길이다. 왕에서 죄인으로, 옥좌에서 유배지로 추락한 그 걸음은 곧 조선 정치의 야만성을 드러낸 궤적이었다. ‘연려실기술’에는 단종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후 시신이 강에 버려졌다는 설이 기록돼 있다. ‘불효자는 웅변하되, 충신은 침묵한다’던 조선의 상징이 그 침묵의 자리에 묻혔던 셈이다. ▼길은 걷는 자에 의해 완성된다. 누군가가 걸었던 흔적 위로 또 다른 누군가가 발을 얹으며 역사는 계속된다. 청령포와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명승으로 이미 지정돼 있으나 그 사이엔 차량 도로와 우회로뿐이었다. 고작 몇백m지만 그 거리에는 단종을 기억하려는 마음과 실제로 그를 따라 걷는 발걸음 사이의 간극이 존재했다. 새로운 연결로가 단지 편의성의 개선으로만 비치지 않는 이유다. 이 길은 단종을 향한 무언의 위로이며, 동시에 그를 몰아낸 권력의 후안무치에 대한 조용한 추궁이다. ▼역사는 늘 힘의 논리로 쓰였지만, 기억은 다르다. 기억은 걸으며 체화되고, 멈춰 서며 되새겨진다. 단종 역사길은 단종의 비극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역사 인식을 되묻는 장치다. 그 길을 걷는 발걸음들이 조선의 권력 구도와 인간 존엄의 균열을 곱씹는다면, 이는 비로소 역사로 살아나는 길이다. 단종의 길은 그렇게 지금 우리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