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80만
칼럼

[신호등]의사만 원하는 나라

강동휘 문화교육부 차장

최근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이 화제를 모았다. 1부는 ‘공대에 미친 중국’, 2부는 ‘의대에 미친 한국’. 제목부터 강렬하다. 전 세계가 기술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데 우리는 왜 유독 의대에만 몰리는 걸까. 방송에서 한 중국 아이는 “과학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한국 아이는 “의사가 돼서 롯데월드가 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짧은 장면이지만 많은 시청자가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강원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서울대 이공계를 준비하던 도내 한 고3 학생이 결국 정시에서 지역 의대로 진학했다. 본인 결정이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 이면엔 소득 격차, 직업 안정성, 사회적 인식 같은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의사는 평균 연봉은 2억3,000만원, 이공계 박사는 9,800만원 수준이다. 수험생 입장에서 어느 쪽이 ‘안전한 길’인지 뻔하다. 지난해 수능에서 상위 1.38% 안에 든 학생 408명 중 무려 87.4%가 의대를 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왔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윤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구급차 이송 시간이 2시간을 넘긴 사례가 6,232건으로 전년(3,233건)보다 두 배 늘었다. 하루 평균 17명이 이송중 긴 대기시간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얘기다.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3,800건을 넘었다.

강원도 역시 다르지 않다. 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응급환자 재이송 건수는 438건으로, 2022년 171건 대비 세 배가량 늘었다. 병상이 없어서, 의사가 없어서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현장 이야기는 더 참담하다. 지난해 추석 연휴 강릉의 한 임신부는 근처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해 7시간 만에 원주로 이송됐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80대 여성은 120km 떨어진 병원까지 가야 했고, 일부 환자는 결국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전문가들은 “의사 부족과 의정 갈등이 응급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은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일부 의료인은 생명보다 집단 이익을 앞세운다는 사실이다.

이제 의대생들은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다. 복귀를 위한 학칙 변경과 국시 추가 시행까지 특혜로 느껴지는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은 곱지 않다. 국회에 올라온 '의대생 복귀 특혜 반대 청원'은 게재 5일 만에 상임 소관위 회부요건인 5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의정갈등의 책임을 이 아이들에게 물어서는 안된다. 최근 학교로 복귀한 도내 한 의대생은 “사회가 우리를 안 좋게 볼까 봐 걱정된다”며 두려운 시선을 보냈다. 모 대학 고위 관계자는 “의대생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의료계의 강경 기류를 의식해, 대학이 올려준 자료를 몰래 다운받아 혼자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료계는 이제 특권의식과 폐쇄성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한다. 의료계에 면죄부를 준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 이번에는 의료계가 이겼다. 하지만 승리를 만끽할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한 달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의료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발표했다. 진단실험 결과, AI는 85.5%를 해결한 반면, 인간 의사는 20%에 그쳤다. 우리는 언제까지 ‘안전한 길’이라고 믿으며 의대에만 인재를 몰아넣을 것인가.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한 방향만 바라보게 하는 교육은 답이 아니다. 과학기술, 인문학, 행정, 환경, 복지 등 수많은 진로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인재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각자의 길을 존중하고 이끌어주는 교육이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