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안과 영남지역에 집중된 대규모 원자력·석탄발전 설비가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핵심 인프라인 '동해안-신가평 HVDC(초고압직류송전)' 건설사업이 늦어지고 있다. 당초 2021년 완공 예정이었던 프로젝트가 최소 8년 이상 늦춰진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 국가 전력망에 비상이 걸렸다. 사업의 지연은 주민 반발과 인허가 문제로 인해 발생했으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전력 수급 불안정이라는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심각한 송전망 ‘병목 현상’=동해안 지역은 신한울 원전과 다수의 석탄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설비(약 16.5GW)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력을 최종 수요처인 수도권(전체 수요의 40%)으로 수송할 송전망 용량은 11.0GW 수준에 그쳐 심각한 병목 현상(계통 제약)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약 5.5GW의 발전설비가 전력을 생산하고도 송전할 수 없어 강제로 출력을 제한받는 송전제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생산시설을 갖추고도 가동하지 못하는 비효율을 낳고 있으며, 블랙아웃 같은 대규모 정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송전망 건설 지연·발전소 위기=동해안 지역은 대규모 신규 원전과 민간 석탄화력발전소들이 밀집해 있는 국내 최대 전력 생산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운반할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면서, ‘전기를 만들고도 팔 수 없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이 때문에 동해안 민간 석탄발전소들은 현재 가동률이 20~30%대로 추락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경제 동반 침체=발전소의 가동 중단·가동률 저하는 지역경제로 연결된다. 발전소는 운영인력의 채용·정비업체 선정·연료 도입과 하역·물류 등 지역 고용과 세수의 중요축이다. 발전소 가동이 멈추고 정지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지역기업의 매출 감소, 고용 불안정, 지방정부 세수 감소로 이어지며 지역상권 위축까지 촉발한다. 민간 발전소와 협력사에 종사하는 1,000여명의 일자리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발전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지자체의 주요 세입원인 지역자원시설세가 크게 줄고 있다. 발전소 폐쇄 예정지역들은 이미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 위기에 직면, 발전소 위기는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 확보 위한 HVDC 건설 시급=최근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력 다소비 산업의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며, 전력망의 적기 확충 시급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전력망 확충은 국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HVDC는 대용량 전력을 손실없이 장거리 송전할 수 있어 동해안의 잉여전력을 수도권으로 나르는 유일한 해법이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전력 당국이 지역 주민·지자체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행정절차 가속화를 위한 특별한 대책과 법적 지원을 마련해 HVDC 건설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제도 개선이 병행돼야=산업통상자원부는 주요 송전사업에 대해 특별법 적용, 행정절차 간소화, 주민보상 기준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도 지역 주민과의 협의를 강화해 일부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절차 지연, 보상기준 불명확, 지자체 간 이견 등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전원·송전의 ‘선발전 후송전’ 구조에서 벗어나, 계통계획과 송전 인프라를 병행 추진하는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지역과의 상생, 투명한 보상 모델이 열쇠=송전망 건설은 지역주민의 이해와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 경관 훼손, 전자파 우려, 토지 보상 문제 등은 충분히 공감할만한 현장의 목소리다.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에 대해 일정 비율의 지역기여금을 지급하거나 전기요금 할인, 인프라 투자, 고용창출 프로그램을 통해 실질적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한전과 정부가 일방적 설명회로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투명한 정보공개와 참여형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송전망 확충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신속히 추진될 수 있다.
■‘지역 수요 창출’과 ‘특별’으로 위기에 대비해야=송전망 건설 지연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지역 내 전력 수요 창출’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 단기적으로는 ESS(에너지 저장장치) 증설이나 양수발전 펌핑 방식 변경 등을 통해 송전 제약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산업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지역이 무너지면 에너지 안보도 ‘흔들’=석탄발전소 위기는 단순한 지역산업의 경영문제를 넘어 국가에너지 인프라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불안을 방치하면 지역공동체와 국가 전력정책에 장기적 비용을 남긴다. 정부는 제도적 특례와 함께 주민과의 신뢰 회복, 지역수요 유치 전략, 재정·정책적 지원을 병행하는 종합 해법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지역경제와 에너지 시스템이 함께 호흡할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전력체계와 지역발전이 가능하다. 지역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
■송전망 지연의 장기화와 지역수요 창출의 당위성=송전제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핵심 대안으로 ‘지역 내 전력 수요 창출’이 부상하고 있다. 전력을 생산지에서 소비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 ‘지역 전력의 자급자족’ 체계를 구축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계통 분산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AI 데이터센터(IDC) 유치, 동해안 전력 위기의 해법=송전망 제약에서 동해안의 잉여전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IDC) 클러스터 유치가 주목받고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24시간 365일 안정적으로 전력을 소비하는 ‘기저 부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전력 생산지인 동해안 지역에 IDC를 유치할 경우 발전제약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 국가전력망 안정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센티브를 통한 정책 지원 시급=동해안을 IDC 클러스터의 최적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하 분산 유도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송전제약이 심한 동해안 지역에 IDC를 건설하는 기업에 파격적 세제 혜택, 인허가 절차 간소화, 부지 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석탄화력발전소지역 특별법' 등 지원법률을 마련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산업 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또, 데이터센터를 단순히 전력 소비자로 볼 것이 아니라, DR(수요반응)이나 ESS(에너지 저장장치) 활용을 통해 전력망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시장 참여자’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 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송전망 건설 지연이라는 위기를 지역경제 혁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