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카이로 대학교에서 한국 정부의 대(對)중동 구상을 밝히는 등 한국의 외교 영역을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이 대통령은 "이집트와 한국은 8천㎞ 이상 떨어진 먼 나라이지만 평화에 대한 오랜 열망의 역사 앞에서 양국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과 이집트 모두 대륙과 해양이 만나며 강대국 간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곳에 있어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랜 기간 평화를 열망한 공통점이 있다고 이 대통령은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인과 이집트인은 지정학적 운명에 순응하며 주어진 평화를 누리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며 "따로 또 같이 써내려 가던 평화에 대한 열망은 1919년 운명과 같이 서로를 마주한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19년 3월 한국에서는 3·1 운동이, 이집트에서는 영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한 이집트 혁명이 동시에 발발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인은 자주독립의 의지로 우렁찬 평화의 함성으로 일제의 무도한 총칼을 이겨냈다. 이집트에서도 독립의 열망을 세계만방에 알리며 분연히 일어난 이 땅의 주인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1943년 일제강점 하에 있던 한국의 독립을 명문화한 이른바 '카이로 선언'이 이집트에서 도출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지도자의 의지와 결단도 평화를 지켜내는 핵심 요소"라며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이끈 '가자 평화선언'에 중재국으로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알시시 대통령님은 2년간 가자지구 사태 속에서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며 중재의 끈을 놓지 않았다"며 "지칠 줄 몰랐던 인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님과 함께 주재한 샤름엘셰이크 평화 회담의 소중한 결실로 피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도 남북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한다"며 단계적 한반도 비핵화 구상을 재차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아랍 국가 최초로 1978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었던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례를 "두려움 없이 미래 세대를 선택한 결단"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다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길도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님을 비롯한 전임 대통령들은 금단의 선을 넘으며 한반도 평화의 새 길을 개척해 냈다"며 "양국 역사에 도도히 흐르는 문명과 평화의 빛은 양국의 공동번영을 이뤄낼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알시시 대령은 전날 단독 및 확대 회담을 111분간 진행했다.
정상회담 후 공동 언론발표문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과 이집트는 '평화 촉진자'로서 한반도와 중동을 포함한 국제평화에 함께 기여하기로 했다"며 방산 협력 확대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추진에도 양국 정상이 뜻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양국 정부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화협력·기술교육 분야에 관한 업무협약(MOU) 2건도 체결했다.
이 대통령은 카이로대 연설에서는 안정(Stability)과 조화(Harmony), 혁신(Innovation), 네트워크(Network), 교육(Education)으로 구성된 중동 외교 구상인 '샤인(SHINE)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이 나일강의 기적에 기여할 차례"라며 에너지·건설·인공지능 등 산업 협력을 확대하고 양국 청년 간 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및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 정부 출범 등 일련의 상황을 두고 "대한민국 국민이 만들어낸, 세계사적으로도 기적과 같은 역사"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동포간담회를 열고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모여 (집회를 했어도) 쓰레기 하나 남지 않고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았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대한민국처럼 역동적인 나라도 없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 중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며 "그뿐 아니라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삶에서 재현하지 않았나"라고 돌아봤다.
이날 있었던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계엄 사태를 두고 오간 대화의 내용도 소개했다.
회담에서 알시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에 놀랐다. 작년 계엄 사태 같은 황당무계한 역사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혈혁명을 통해 국민의 손으로 정상 회복하는 것을 보며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이 대통령은 전했다.
그러면서 (이집트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대한민국을 보며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했겠느냐"며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그 위대한 반전을 지켜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다시는 여러분이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든든한 힘이 돼 드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박 3일간의 이집트 공식 방문을 마치고 21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출발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늦은 오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다.
22일부터는 G20 회원국 자격으로 정상회의에 참석해 포용적 성장, 기후변화와 재난, 공정한 미래 등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중견 5개국(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호주) 협의체인 '믹타'(MIKTA) 소속국 정상들과의 회동도 예정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