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가 전국을 뒤흔들던 순간 군 부대는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계엄 선포 후 1년이 지났지만 당시 군에 복무했던 청년들은 그날의 혼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날 병장으로 전방에서 근무했던 장모(23)씨는 취침 중 생활관 문이 갑자기 열리고 지휘통제실 집합 지시가 떨어지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가늠할 틈도 없이 곧장 무장을 갖춘 뒤 초소로 투입됐다. 옆 부대에서 헬기가 실제로 이륙하는 장면까지 보이자 그는 “상황이 평소 비상 근무와는 다르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급하게 움직이던 병력들 사이에서는 공포에 질려 말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못했다.
도내 부대에서 불침번 근무 투입을 준비하던 상병 윤모(23)씨도 분위기가 급변하던 순간을 기억했다. 사이버지식정보방으로 향하던 중 ‘계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부들이 모두 부대로 복귀했다. 계엄의 의미를 모르는 이들은 멍했고, 알고 있는 이들은 “진짜 전쟁이 발발한 건 아닌가”라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화천 GOP에서 근무하던 상병 김모(23)씨는 북과 인접해있는 GOP 특성상 혼란은 더 컸다고 회상했다. 비상벨이 울렸지만 북한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의문을 키웠다.
군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던 만큼, 가족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강릉에 사는 장모(52)씨는 계엄 소식을 접한 뒤 아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자 불안만 깊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어 밤새 뉴스만 확인했다”며 “혹시라도 위험한 곳에 나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 뿐이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