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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2026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점 빼 주는 사서 선생님

- 황명숙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학생, 힘 빼요.”

주율이는 폭신한 빈백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여기는 도서관 서가 뒤편, 일명 ‘마음 쉼표 방’이다. 주율이는 사서 선생님의 안내를 받고 10분 전 이곳에 들어왔다. 방 안에는 은은한 종이 냄새만 감돌았다.

“허허, 힘을 빼라니까. 아까 밖에서 책 읽을 때도 표지를 꽉 쥐고 있더니, 여기서도 그러네.”

주율이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제, 제가 책 읽는 걸 보셨어요?”

“그럼. 학생은 책장을 넘길 때조차 종이가 찢어질까 봐 조심조심하던걸? 숨소리도 잘 안 들릴 만큼 잔뜩 긴장해서는.”

편안한 차림에 토시를 낀 사서 선생님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푸근한 인상과 달리 말투는 깐깐했다. 대출대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친절한 ‘스마일 샘’과는 딴판이었다.

“저 힘 뺐어요옹.”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율이는 주먹을 꼭 쥔 채였다.

할머니와 민아 생각이 났다. 둘 다 이곳 ‘마음 쉼표’에서 점을 빼고 딴사람이 되었다. 심통쟁이 할머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이, 까칠한 민아는 웃음 천사로 변했다.

주율이도 꼭 점을 빼야 했다. 열 살이 될 때까지 겁쟁이에 울보인 이유가, 오른쪽 눈 밑에 있는 이 점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아무래도 주율이가 눈물이 많은 건 눈 밑 점 때문인가 봐.”

엄마 아빠의 말처럼 주율이는 사소한 일에도 눈물부터 났다. 얼마 전, 복싱장에서 2학년 동생한테 스치듯 맞고 줄줄 울었을 때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점만 빼면 세상일에 별로 놀라지 않고,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울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자, 보세요. 저 지금 힘 다 빼서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하잖아요.”

주율이는 억지로 팔을 흔들어 보였다.

사서 선생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직 멀었어요. 학생, 마음의 힘이 안 빠지면 몸의 점도 못 빼요. 평소에 너무 애쓰고 살죠? 잘하려고 애쓰고, 울지 않으려고 참고. 그러다 또 일이 잘 안되면 울고.”

사서 선생님이 정곡을 찔렀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주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사람도 책이랑 같아요. 글자가 너무 빽빽하면 읽기 힘들듯 사람도 여유가 없으면 탈이 나거든. 우리 사서 샘은 책만 정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도 읽어요. 학생의 몸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쉼표가 필요해요’라고 소리치고 있어요.”

주율이는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냥 점이나 빼러 왔는데,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진짜 빼고 싶은 거 맞죠? 다시 해 봐요. 안 그러면 샘도 너무 힘들거든.”

선생님의 말에 주율이는 눈을 꼭 감고 주문을 외웠다.

‘힘 빼자, 빼자, 빼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복싱장 관장님도, 미술 학원 원장님도 주율이만 보면 맨날 힘을 빼라고 했다.

“힘을 빼고 주먹을 던지듯 쳐라.”

“그림에 힘 좀 빼고 칠하렴.”

힘을 빼는데 어떻게 주먹이 세지고, 어떻게 색칠이 잘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근데요, 제가 힘주면 샘이 힘들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사람이 긴장하면 근육이 뭉쳐서 몸이 돌덩이처럼 뻣뻣해지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점을 빼려면 나도 힘이 엄청나게 들어가겠죠? 그러니까 자, 온몸이 물 위에 뜬 미역처럼 나른해진다는 느낌으로 있어 봐요.”

사서 선생님이 책상 서랍에서 뭔가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소독약 묻힌 솜일까? 아니면 바늘? 주율이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눈가로 여지없이 눈물이 찌르르 흘렀다.

“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무서워서 안 할래요!”

주율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 효강이가 그 얘기를 듣고 펄쩍 뛰었다.

“야, 그거 불법이야. 점은 병원에서 빼야지. 우리 삼촌이 치과 의사인데, 면허 없는 사람이 하면 안 된대. 너 안 하길 잘했어. 그 샘 완전히 사기꾼이네.”

효강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를 빼려면 치과, 점을 빼려면 피부과에 가야 한다. 도서관에서 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옆에 있던 민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최효강, 병원에서 빼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사서 샘은 특별한 기술이 있으시거든. 그리고 뺀 사람은 효과를 톡톡히 봤어. 3반 동재도 점 빼고 나서 엄청 인기 많아졌는걸.”

“웃기지 마. 동재 코에 점은 그대로던데?”

효강이와 민아가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주율이는 친구들이 싸우는 게 불안해서 가슴이 콩닥거리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얘, 얘들아. 싸우지 마.”

민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주율이를 눈치채고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주율아, 최효강 말 듣지 마. 사서 샘은 네가 그 점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딱 보면 아실 거야. 네가 진짜로 없애고 싶은 게 뭔지 샘은 다 아시니까, 한번 믿어 봐.”

민아의 말은 어딘가 알쏭달쏭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주율이는 다시 용기를 냈다. 사실은 그 지긋지긋한 점을 너무나 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왔네요?”

사서 선생님은 올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주율이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또다시 몸에 힘이 들어갔다.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건 본능이에요. 자기를 지키려고. 생각대로 안 되는 것도 본능이고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주율이는 묘하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하고 싶지 않은데 몸이 굳는 건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라니.

“학생, 힘을 빼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말아 봐요. 어렵겠지만 시도해 보는 거죠.”

주율이는 머릿속에 있던 걱정덩어리를 저 멀리 바다에 던져 버린다고 상상했다. 흐느적흐느적 파도 따라 움직이는 미역이 된 상상도 했다. 그러자 귓가에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스르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숨이 쉬어지고 어깨가 가벼워졌다.

“자, 다 됐어요.”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선생님의 목소리에 주율이는 눈을 번쩍 떴다.

“벌써요?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요?”

주율이는 급히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비춰 보았다.

“어? 뭐예요. 점이 그대로 있잖아요!”

오른쪽 눈 밑의 까만 점은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역시 효강이 말이 맞았다. 이 선생님은 사기꾼이 분명하다.

“난 학생 눈 밑에 있는 점을 뺐다는 얘긴 안 했는데요?”

“그럼 뭘 뺐다는 거예요? 순 힘만 빼라고 하고는. 엇, 정말 힘만 뺀 거네요?”

“그런 셈이죠.”

주율이는 배신감에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실망이에요. 내가 다시는 이 도서관에 오나 봐라!”

주율이는 문을 쾅 닫고 도서관을 뛰쳐나왔다.

집에 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하소연했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선생님 편을 들었다.

“에이, 아니여. 그 슨상님이 얼매나 용한디. 할미한테 박혀 있던 점을 쏙 빼 줬다니께. 선생님이 알려 주신 시인의 시 덕분에 칠십 평생 잊고 있던 감성을 찾았어.”

“할머니는 어디 점을 뺐는데요?”

“그건 말하기 좀 그려. 다만 할머니 마음 어딘가에 박힌 점이었어야. 고런 까만 점이 아니고.”

할머니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으며 화단의 꽃을 정리했다.

답답한 마음에 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아, 너 점 뺀 거 진짜야?”

“당연하지. 난 사서 샘이 내 얘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책을 한 권 주셨어.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 뾰족한 점이 빠진 것 같아. 앤은 정말 긍정적인 아이거든.”

주율이는 전화를 끊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할머니와 민아의 공통점은 책을 처방받고 마음의 점을 뺐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나한테는 왜 책 얘기도 안 해 주는데? 누가 마음의 점 빼고 싶대? 에이, 돌팔이, 사기꾼, 마녀 아줌마!”

눈 밑의 점은 결국 빼지 못한 채, 주율이는 씩씩거리며 복싱장으로 향했다. 샌드백을 사서 선생님이라 생각하고 마구 때려 줄 생각이었다.

“이 샌드백은 이제 사서 샘이야.”

잔뜩 화가 났지만 동시에 맥이 탁 풀렸다. 어차피 점도 못 뺐는데, 잘하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나 싶었다. 주율이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주먹을 툭 던졌다.

퍽!

엄청난 소리가 났다. 주먹이 샌드백에 쩍 하고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 주먹에 2학년 동생이 맞았으면 100미터 밖으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오우, 권주율. 그거야!”

관장님이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맨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니 오늘은 쫙 뺐구나? 힘을 빼니까 허리 회전이 빨라져서 주먹이 훨씬 세지잖아. 자식, 이제야 내 말을 알아들었어.”

주율이는 멍하니 자기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힘을 뺐는데 주먹이 세졌다고?’

신기한 일은 미술 학원에서도 일어났다.

주율이는 망친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붓을 가볍게 쥐었다. 잘 보이려는 생각보다는 끝까지 완성해야겠다 생각했다. 긴장이 덜 되었고 붓이 스케치북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오, 우리 주율이가 이제야 색칠 좀 하네.”

원장님이 감탄하며 말했다.

“색에 힘을 빼니까 훨씬 자연스러워. 그동안은 너무 긴장해서 덧칠만 잔뜩 했잖아. 힘을 빼면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진단다.”

그 말에 주율이는 머리에 번개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관장님도 원장님도 그리고 사서 선생님도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힘을 빼라.”고.

‘가만, 사서 샘이 뺐다는 점이 혹시…….’

머릿속으로 도서관에서의 대화가 스쳤다.

“책장을 넘길 때조차 조심조심하던걸.”

“학생은 평소에 너무 애쓰고 살죠?”

사서 선생님이 빼 준 건 당연히 얼굴에 있는 까만 점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잔뜩 힘주고,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옭아매던 주율이의 욕심점 그리고 긴장점이었다. 선생님은 주율이가 도서관 구석에서 눈치만 보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다 알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나한테는 책 대신 힘 빼기 처방을 내리셨나 봐.’

주율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원하는 점은 못 뺐지만 그래도 뭔가 무거운 건 뺐으니 괜찮지 않나요?”

사서 선생님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집에 돌아온 주율이는 거울을 보았다. 오른쪽 눈 밑의 점은 여전히 콕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는 그 점이 밉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흥, 점 좀 있으면 어때. 힘 빼면 다 해결되는데.”

주율이는 거울 속 자신을 다시 한번 뚫어지게 보았다. 눈이 시큰했다. 이내 씩 웃자 눈 밑의 점도 덩달아 윙크하듯 찡긋 움직였다.

그래도 눈물점은 눈물점인가 보다.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슬프거나 속상해서가 아니라, 꽉 막힌 속이 뻥 뚫려서 나는 시원한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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