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역사의 불행은 그날 그가 던진 한 단어에서 시작됐다. 0.73% 간발의 차로 거둔 승리였기에 더욱 극적인 출발이었다. 핍박받던 검찰총장 이미지로 불과 2년여 만에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었으니, 당사자는 물론 보수 진영 입장에서 얼마나 기쁜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취임 첫날부터 윤석열 씨의 문법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그는 위기의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도드라지게 내세웠다.
그의 발언은 곧바로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세력이 누구냐, 수수께끼 풀이가 시작된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고 학계는 반지성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술 토론까지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 취임한 대통령이 내뱉은 날 선 발언은 그냥 흘려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아스팔트 위에 선 정치 선동꾼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최고권력자, 대통령이었다.
잔뜩 긴장한 야권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반지성주의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그가 내놓은 발언은 반대 진영을 향한 저주에 가까웠다. 허위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그 맹종 세력에게 절대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 싸우라고 지지자들을 노골적으로 선동하기까지 했다. 이런 주장은 12.3 불법계엄을 메시지 계엄이라고 칭한 그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있다.
최근 공개된 내란 특검의 공소장에는 윤석열 씨가 이 반지성주의 척결을 얼마나 열망했는지 고스란히 적시되어 있다. “총살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싹 쓸어버리겠다.”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이 말이 나온 시기는 취임 후 불과 6개월 지난 시점이었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 승리까지 거머쥔데다 눈엣가시였던 이준석 대표를 당에서 축출한 뒤에 가진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자리, 당연히 야당의 줄탄핵도 예산 발목잡기도 없던 때였다. 난데없는 비상대권이라는 말은 여기서 처음 등장했다. 어쩌다 취임 초기부터 이토록 위험한 구상을 하게 되었을까. “내가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도망다닌 윤석열이야.” 신군부 서슬이 퍼렇던 시절 서울대 모의 법정에서 전두환 씨에게 사형을 구형한 대학생 윤석열을 떠올리면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다.
<반지성주의를 말하다>의 저자인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이 의문을 풀 열쇠를 제공한다. ‘반지성주의자는 종종 소름 끼칠 만큼 박식하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반지성주의가 무지 탓이 아니라 박식함의 결과라니.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 역시 이런 탁견을 남겼다. ‘무지란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지식의 포화로 미지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두 학자의 말을 풀어서 설명하면 반지성은 지식의 부족함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오만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의견에 귀를 닫아 버리는 외곬수가 되기 십상이다. 또한 타인의 말을 듣더라도 자기 확신만 강해질 뿐, 반지성주의의 저주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떤가. ‘59분 대통령’이란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말을 앞세우길 좋아하고, 툭하면 장관과 참모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던 윤석열 씨가 떠오르는 것 같지 않은가. 반지성을 척결하겠다고 소리높인 그는 거꾸로 스스로 반지성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결국 반지성의 끝판인 불법 계엄을 시도하다 바닥까지 추락한 그다. 그러니 부디 앞으로 반지성주의자가 어딘가에서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냥 흘려 들으시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