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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숫자가 외면한 생명의 무게, 강원 구급 현장의 ‘균열’을 직시하라

이무철 강원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이무철 강원특별자치도의원

정책을 설계하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숫자는 가장 정직한 지표다. 수요와 공급, 인력과 예산의 산식(算式)은 정책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도민의 목소리는 때로 그 차가운 수치보다 훨씬 먼저, 그리고 더 깊숙이 가슴에 와닿는다. 최근 만난 한 도민은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찰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구급차가 조금만 늦었어도, 지금 우리 가족은 없었을 겁니다.”

이 짧은 술회는 구급대가 도민에게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마지막 희망임을 웅변한다. 구급대원은 행정체계의 부속이 아니라 도민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강원의 최후 보루는 개인의 사명감이라는 임계점을 넘어 구조적 붕괴의 위험 앞에 서 있다.

소방본부의 데이터는 이 경고음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2024년 현장에서 필요로 했던 구급 대체인력은 53명이었지만 실제 충원은 6명에 그쳤다. 2025년 65명 수요에 9명 보강, 2026년 계획 역시 55명 필요에 단 10명 충원뿐이다. 지난 3년간 실제 수요 대비 충원율이 줄곧 10%대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도민의 안전이 예산 우선순위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왔음을 증명한다.

이 수치를 타 시·도와 비교하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2025년 기준 경기도는 200명의 대체인력을 운용하고 있으며, 서울(32명)과 부산(36명)은 물론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들이 수십 명 단위의 인력을 상시 확보해 안전망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넓고, 산악과 해안이 공존하는 가장 험준한 지형을 가진 강원이 단 9명의 인력으로 도민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현실은 정책적 직무유기에 가깝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이 난맥상이 인재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4년 5.1대 1, 2025년 2.9대 1이라는 경쟁률이 보여주듯, 현장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은 이미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현장에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예산이라는 행정적 장벽 때문이다.

인력 공백의 대가는 현장의 ‘3인 1조’ 근무 원칙의 붕괴로 이어진다. 심정지나 중증 외상 현장에서 전문 처치와 운전, 이송을 병행하기 위해 3인 1조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최소 표준이다. 대체인력이 없어 2인 1조로 출동하는 순간, 처치의 전문성은 절반으로 깎이고 골든타임은 잠식당한다. 이는 현장 대원들에게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압박과 번아웃을 강요하며, 결국 도민이 받는 구급 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제 행정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첫째, 2026년 대체인력 확충 계획을 '3인 1조 상시 가동'이라는 실제 수요에 맞춰 전향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예산의 논리가 아니라 생명권을 기준으로 삼는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강원의 지리적 특수성을 반영한 ‘중·장기 구급 인력 수급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단년도 땜질식 처방으로는 거대한 안전의 구멍을 메울 수 없다. 셋째, 안전 예산을 소모적 비용이 아닌, 도민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도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결코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수 없다. 위급한 순간 “구급대가 제때 올 수 있을까”라는 불안을 품게 만든다면, 그것은 공공 안전망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과 같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진정한 특별함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도민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국가와 지자체가 곁에 있다는 확신을 주는 정책적 결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숫자 뒤에 숨겨진 생명의 가치를 직시할 때, 비로소 안전한 강원의 내일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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