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마을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말이 어렵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은퇴자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단순히 집만 짓는 것이 아니라, 병원과 돌봄, 문화와 여가, 교육과 공원까지 한 생활권 안에 갖춘 은퇴자도시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가와 지자체가 행정과 재정으로 지원하고, 시범사업과 특구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왜 이 법이 중요할까.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노후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그런데 많은 어르신이 아프면 어디로 가나, 혼자 있다 쓰러지면 누가 아나, 겨울에 눈 오면 병원은 어떻게 가나 같은 걱정을 안고 산다. 은퇴자도시는 이런 불안을 줄이는 생활 안전망을 도시와 마을 단위로 만드는 정책이다.
강원특별자치도에겐 특히 큰 기회다. 강원은 숲과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등 치유와 관광 자원이 풍부해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강원이 진짜 선택받으려면 풍경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르신들이 이주를 결심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안심이다. 가까운 병원, 돌봄 인력, 응급 대응, 겨울철 이동권까지 일상이 실제로 굴러가야 한다. 강원의 과제는 자연의 장점을 살기 좋은 일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권역형 모델 도입이다. 대규모 단일 조성보다 강원의 특색에 맞춘 거점을 나누어야 한다. 산과 숲을 살린 치유형, 바다와 문화를 살린 해양형, 수도권과 가까운 생활권형 등으로 모델화하고, 시·군별 여건에 맞는 후보지를 묶어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이 아닌 강원 전체가 하나의 완성된 모델이라는 설득력이 생긴다.
둘째, 핵심은 사람이다. 시설은 돈으로 지을 수 있지만, 의료·돌봄 인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다행히 법에는 인력을 위한 주택 공급 근거가 담겼다. 사람이 살 집이 있어야 사람이 온다. 강원은 도립의료원, 지역 병원, 대학과 손잡고 교육-채용-정착을 한 번에 묶는 인력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어르신들이 여기는 믿고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는다.
셋째, 생활 인프라의 기본선을 정해야 한다. 은퇴자도시는 멋진 조감도보다 생활의 편의가 핵심이다. 집 근처 동네의원, 방문 진료 거점, 돌봄센터, 산책로가 필수다. 특히 버스가 끊기는 곳이라면 셔틀이나 수요응답형 교통(DRT)을 도입해 겨울철에도 병원과 시장을 오갈 수 있는 이동 체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넷째, 투기와 난개발 우려를 차단해야 한다. 은퇴자도시가 분양 중심 개발사업으로 변질되면 지역사회 갈등이 생긴다. 공공이 중심을 잡고 임대 위주로 운영하며, 분양이 필요하더라도 환매조건부 등 장치를 통해 시세차익을 막는 청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도민들도 우리 동네가 좋아지는 사업으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섯째, 세대 통합형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어르신들만 모아놓은 고립된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돌봄 인력과 청년, 지역 주민이 어울려 살아야 지속가능하다. 농어촌유학, 지역 일자리와 연결하면 마을이 유지되고 상권이 살아난다. 은퇴자도시는 복지정책이자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강력한 생활산업이 될 수 있다.
법 통과는 출발점이다. 이제 강원은 시범사업 추진과 예산 확보, 민간 투자 유치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강원이 자연의 강점을 안심의 생활권으로 바꾸는 순간, 강원은 대한민국 은퇴자도시의 표준을 가장 먼저 정립하게 될 것이다. 도민의 삶을 지키고 지역의 미래를 여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