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닝 붐이 일고 있다.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문화로 자리잡으며 마라톤 인구도 크게 늘었다. 이 시점에 세계 7대 마라톤에 도전했던 기억들을 되새겨 본다.
긴 공직 생활동안 옆을 쳐다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 오십 고개를 넘어서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건강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농업정책과에 근무하던 시기였다. 때마침 밀레니엄 해를 맞아 강원일보사가 범도민 행사로 기획하여 추진한 3·1절 마라톤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 P선배, J선배와 함께 10㎞ 대회에 참가하였다. 당시만 해도 마라톤은 일반 대중스포츠보다는 일부 특정인들이 하는 운동으로 인식되었던 시절이었다. 이 대회가 나에게 마라톤을 하는 동기부여와 시발점이 되었다. 완주 후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었던 지나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첫 풀코스 도전은 마라톤 입문 2년째인 2002년, 춘천마라톤이었다. 4시간1분 51초, 의암호를 따라 달리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세계 7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 여정은 도청 회계과 근무 시절, 2006년 4월17일 제110회 보스턴(Boston)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대회에서 3시간50분59초로 완주하였다. 보스턴 마라톤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오래된 마라톤대회로, 1897년 처음 개최된 이후 올해가 130회 대회이다. 이 대회만 유일하게 참가자격 기준 기록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다. 참가자격은 공인 마라톤대회에서 남녀, 연령별 자격 시간 내에 완주한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다. 남자의 경우 18~34세는 3시간10분, 50~55세는 3시간35분. 70~74세는 4시간10분 이내의 기록이 있어야 참가 가능하다. 이 당시 나의 경우 50대 초반으로 3시간35분 이내의 기록을 충족해야 했다. 이 대회 완주 이후, 퇴직 후 메이저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이후 공무원 공로연수 기간중인 2012년 10월 시카고(Chicago) 마라톤, 2013년 공직 퇴직후 베를린(Berlin) 마라톤, 2014년 도쿄(Tokyo) 마라톤과 세계에서 참가 규모가 가장 큰 뉴욕(New York) 마라톤, 2015년 런던(London) 마라톤대회를 완주했을 때,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을 완주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 말에는 작은 안도와 함께, 어쩌면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런던 이후에도 아테네, 로테르담, 춘천마라톤 등 풀코스 46회를 완주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마라톤대회가 중단되어 나 역시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러다 지난해 시드니 마라톤 완주를 계기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점점 더 솔직해져 예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었고, 회복에도 더 많 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선택했고,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 오히려 나를 다시 길 위에 서게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뛰어난 러너는 아니었다. 남들보다 빠르지도 않았고,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는 꾸준함이었다.
고회를 넘긴 지금도 풀코스 마라톤을 뛸 수 있는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는 아내에게도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운동화를 신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