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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용호선칼럼]난망한 겨울산업, 다시 매경한고(梅經寒苦) 지혜로

논설위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 관객몰이에 역행하는 날씨

강추위, 동장군(冬將軍)의 맹위는 북강원도가 제격

변화한 날씨 활용하는 생산성 확보에 팔 걷어붙여야

미국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FrozenⅡ)'의 관객몰이가 뜨겁다. 역대 외화 흥행 2위에 올라섰다고 한다. 1위 어벤져스:엔드게임(2019년)의 기록(1,393만4,604명)을 언제 넘어서느냐가 관심사다. 이미 전 세계에서 1조5,536억원을 벌어들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메인캐릭터 엘사(Elsa)가 읊어대는 'Into the unknown~(미지의 세계를 향해~)'이 주문(呪文) 효력을 발휘해 세계 영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고 있다는 평이자 관망이다. 플라톤은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들어 가상현실을 이데아의 적으로 간주했지만 그림자와 다름없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빚어내는 즐거움은 훈훈할 게 분명하다.

'반짝 추위'에 기댄다면 '비전 없음'

현실의 바깥 기온도 예년에 비하면 한층 따스하다. “겨울답지 않다”는 말을 밥 먹듯 듣는 지경이다. 어쩌다 공기가 차다 싶은데 기상캐스터는 '반짝 추위'라고 안내한다. 날씨가 곧 풀린다는 것이다. 추위를 한껏 기대했던 가슴이 다시 애간장을 태우게 되는 모드다. '겨울=강원도'라는 인식조차 허물어진 분위기다.

겨울축제들이 울상이다. 애써 준비한 정성은 차치하고 예산 투입 대비 수입을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는 하소연까지 들린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한국 대표축제를 졸업하고 '글로벌 육성 축제'로 도약한 '화천산천어축제'가 행사 기간을 연기, 오는 27일부터 장을 펼치기로 했다. 도내 각지에서 눈·얼음·빙어를 테마로 개최하는 축제들이 갈팡질팡, 냉가슴을 앓는 상황이다. 주민의 입장에서는 국내 타 지역에 비해 절대적 우위의 경쟁력을 지닌 추위도 더는 별 볼 일 없어진 실정이니 야속하기만 하다. 스키장들이 인공눈(雪)에 의지하는 처지이고 보면 경제성이 낮아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고충을 극복해낸 겨울 이벤트마저 난감해진 형편이다.

“춘천은 겨울축제가 없지요? 다행이네요.” 며칠 전에 모처럼 조우한 지우가 건넨 말의 뉘앙스가 절묘하기는커녕 야릇해서 갸웃거렸었다. 수년째 겨울 이벤트 모색에 골몰한 춘천시의 경우가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인접한 화천을, 빙어축제로 쏠쏠한 재미를 본 인제군을 부러워하게 했던 추위가 더 이상 겨울을 지배하지 못할 변동이라는 관점에서다.

요즘 사정에 돌아보면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의 기후가 가상했다.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을 열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3수(세 차례 도전) 끝에 유치한 '지구촌 겨울축제'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상 최고 대회”라고 평했다. 하지만 그 이벤트를 통해 창출하고자 했던 유산, 레거시(Legacy)는 신기루처럼 증발한 형편이다. '새로운 지평'을 열기는커녕 추위에 기댈 수 있는 기후가 아니니 더는 비전으로 삼기 어렵다. 추운 겨울은 이미 휴전선 너머로 치고 올라간 형국이다. 북한이 총력을 기울이다시피 해 조성한 마식령스키장을 갖고 유럽 국가에서의 마케팅에 나섰다는 소식이니 말이다.

'겨우살이' 아닌 '겨울살이'가 관건

강원도 내 이번 겨울축제들의 손실이 5,000억원대에 이른다니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는 문명시대에 경제적·금전적 증발이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하게 되는 질문, '추위가 무색해진 겨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겨우살이'가 아닌 '겨울살이'가 걱정이어서다.

전통적인 미덕은 매경한고(梅經寒苦)의 지혜였다. '한고'는 결코 파경을 암시하는 흉조가 아닌 매화의 향(香)을 예고하는 길조였다. 유교의 5대 경전 '시경(詩經)'에 “매경한고 발청향(梅經寒苦 發淸香), 인봉간난 현기절(人逢艱難 顯其節)”이라고 적혀 있다. '매화는 추위를 이겨낸 뒤에야 맑은 향기를 발하고, 사람은 고난 속에서 절개를 드러내 보이게 된다'는 의미다. 애니메이션으로서만이 아닌 생의 현장으로서의 '겨울왕국=강원도' 구축에 팔을 걷어붙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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