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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소설]세기의 사냥꾼(4795)

  삼림이리(15)

 개척마을 사람은 이리들이 부엌의 빗장과 안방의 미닫이를 열었다고 주장했으나 일부 학자들은 그걸 부인했다.

 원숭이 같으면 손이 있어 그런 짓을 할지 모르지만 손이 없는 이리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현장조사를 했던 군경합동조사반은 이리가 주둥이로 미닫이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도 소리없이 해냈다. 부엌의 빗장문은 아마도 사람들이 잘 잠구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졌다. 이리는 여러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문단속을 허술하게 한 집을 선택한 것 같았다.

 이리들은 안방에 들어가 여덟살난 여자아이의 목을 콱 물었다. 목이 물린 여자아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질식했는데 이리들은 그 시신을 마을어귀에까지 끌고 나갔다.

 이리들은 그곳에서 시신을 몇 토막내고 각자 한토막씩 물고 갔다. 그 놈들은 몹시 굶주리고 있었을텐데 시신을 뜯어먹지 않았다. 우선 안전한 곳까지 운반하겠다는 처사였다.

 이리들의 사람사냥은 완벽했다. 오카다집안사람들은 새벽까지 여자아이가 물려 간 것을 몰랐다.

 군경합동반은 이리들의 발자국을 추적했으나 허사였다. 영하 35도나 되는 추위때문에 눈사람처럼 옷을 끼어입은 사람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촌장과 그들은 의논을 했고 그 결과 조선인 개척마을에 사는 박상훈포수를 다시 불러오기로 했다. 이리들을 잡을 수 있는 포수는 그 뿐이었다.

 박포수는 이틀후에 여섯사람의 조선인 조수와 몰이꾼들을 데리고 왔다. 식인 이리들뿐만 아니라 아예 그 일대에 사는 이리들은 모두 소탕하겠다는 말이었다.

 박포수는 산중에 있는 통나무 오두막집에 사냥본부를 설치했다. 일본인 기술자들이 그곳의 지세와 산림 토질등을 조사하기위해 만들어 놓은 통나무집이었는데 그때는 비어 있었다.

 박포수 일행과 일본인 포수 세명이 그 곳에 머물렀고 박포수와 조선인 조수 한 사람이 산중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사흘동안 산중을 돌아다니면서 이리들의 동태를 살폈다.

 사방 60리쯤 되는 산림안에 서넛쯤되는 이리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각 무리는 열서너마리쯤 되었으므로 모두 쉰 마리쯤 되는 것 같았는데 새끼들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 같았다.

 날씨가 아주 추웠다. 통나무 집에 있던 스토브가 벌겋게 열을 내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되도록 벗지 못했다.

 박포수는 하필이면 가장 추운 날에 이리사냥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리를 잡기전에 사람들이 얼어죽을 염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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