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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오솔길]페이지터너

김경미 시인·아나운서·강릉문협 부지부장

지구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는 페이지터너라는 직업도 있다.

피아노 독주회, 혹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있을 때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옆에 앉아 악보를 넘겨주는 이를 그리 부른다.

연주가 중도에 끊어지지 않도록 섬세하면서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연주 내내 긴 침묵 속에서 연주자를 건드려서도 안 되고 연주자보다 호흡이 빨라서도 안 되며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악보를 넘겨주어야 한다. 더군다나 악보를 넘기는 소리도 내어서는 안 되며 절대 화려한 옷을 입어서도 안 되고 연주자보다 한 발 늦게 등장해서 한 발 먼저 퇴장하는 연주자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몇몇 예민한 피아니스트들은 연주회를 앞두고 페이지터너가 누구인가를 따지기도 한다.

자신이 믿는 페이지터너가 없으면 연주를 못하는 피아니스트도 있다고 하니 미미한 이름 뒤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너무나 크다.

그렇다면 왜 유독 연주회에서만 페이지터너가 필요한 것일까.

요즘 스포트라이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로 인한 우울증을 앓는 경우라고 하는데 굳이 연예인이나 예술가들로 한정 짓기에는 우리의 마음의 병이 너무도 깊다.

우리 가까이에서 기꺼이 페이지터너 역할을 맡아주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까닭이다.

서로에게 그림자같이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사는 일, 홀로 주목받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심장으로 사는 일. 그런 일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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