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강원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들뜬 명절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8월 말 기준 340억원에 달하는 임금 체불 규모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그 속에 생계의 벼랑 끝에서 버티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신음이 숨어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밀린 임금은 곧 끊어진 밥줄이자 무너진 삶의 버팀목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백성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권력은 제아무리 거대해도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경고다. ▼유독 눈에 띄는 건 피해자 다수가 영세업체 소속이라는 점이다. 작고 힘없는 기업에 기대어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언제나 제일 먼저 흔들린다. 건설 현장에선 부도가 난 하청업체 탓에 장비가 압류되고, 농축산업에선 임금을 받지 못한 계절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구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옛사람들은 권세가 약자를 억누르는 것을 ‘이리의 발톱이 양의 목덜미를 움켜쥔다’고 비유했다. 지금 강원에서 벌어지는 임금 체불 사태가 딱 그러하다. ▼2022년 204억원이던 강원지역 임금 체불액은 불과 2년 만에 364억원으로 치솟더니, 지금도 300억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5,000여명이 제 삯을 받지 못했다. 예방보다 사후 처리에만 머문 결과가 이렇게 누적되고 있다. 임금 체불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사업장에 대해선 입찰 제한이나 사업 정지 같은 실효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공동체 모두가 즐거워야 할 추석을 앞두고 가족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를 잃은 노동자가 많아진다면, 그것은 임금 체불이 아니라 공동체의 근간이 뒤흔들린다는 신호다. 명절 밥상 앞에서 웃을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늘어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임금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고, 노동의 대가는 계약이 아니라 생존이다. 고대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이유는 삶의 지속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불씨 또한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