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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세상]탈출로서의 가출과 어느 보호소년에 대한 추억

안종화 춘천지법 부장판사

안종화 춘천지법 부장판사

필자는 현재 한시적으로 소년재판(소년법 제2조는 소년이란 '19세 미만인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여기서의 소년은 19세 미만의 소년 및 소녀를 통칭한다)을 담당하고 있다. 근래 소년재판을 하면서 5년 전 서울가정법원에서 1년 동안 수행했던 소년재판의 추억이 떠올랐다.

처음 소년재판을 할 때는 소년의 가출을 일상생활에서의 일탈이라고만 생각했다. 따라서 가출 후 비행으로 나아간 보호소년에게 가출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소년재판을 거듭할수록 일탈이 아닌 폭력과 학대가 자행되는 가정으로부터 탈출로서의 가출이 존재하고, 그 경우 나의 당부는 공허한 메아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 해체로 인한 방임과 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인해 가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소년들을 위한 대책으로는 가정 내 폭력과 학대를 막고, 가정이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다하도록 하되, 돌아갈 가정조차 없는 소년들에 대하여는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보듬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시행되고, 다수의 아동보호시설, 쉼터 등이 마련돼 형편이 나아지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같은 약자이지만 투표권이 있고, 투표 참여율이 높은 노인들에 대하여는 표를 의식한 선량(選良) 후보자들의 다양한 복지정책이 쏟아지고 있으나, 투표권이 없는 소년들에 대한 정책은 현저히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필자는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가출소년이 있다. 그는 아버지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한 후 학업을 중단한 채 가출했다가, 가출 후 저지른 생계형 절도 등으로 인해 나에게 소년재판을 받았다. 나로서는 그를 폭력가정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고, 비행성을 교정하고자 소년보호시설에 6개월 동안 감호를 위탁하는 처분을 하였다.

그 후 소년과는 몇 번의 서신교환과 소년보호시설의 원생들이 개최하는 축제에서의 재회를 통해 장래희망이 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은 위 축제에서 컴퓨터 작업으로 완성한 '내 꿈은 판사'라는 작품을 보여주면서, 판사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나는 미래의 판사에게 내가 아는 한도에서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소년은 소년보호시설에서 성실히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해 다른 원생들의 모범이 되었고, 당시 서울가정법원에서는 그에게 법원 산하 서울소년보호재단의 기금으로 소정의 희망장학금을 지급해 격려하였다.

소년은 나에게 10년 후 자신이 판사가 될 것을 약속하면서 그때는 같이 근무하자고 하였다. 그때 나는 판사가 된다면 소년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를 꼭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만일 그가 판사가 되어 소년재판을 한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평범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나보다는 훨씬 보호소년들에 대한 이해력과 공감능력이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졸업한 후 3년간의 로스쿨을 마치는 막대한 비용을 과연 소년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그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나에게 한 약속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 나는 그가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소년재판을 하는 모습을 유쾌한 기분으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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