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20일)가 24절기 중 여덟 번째인 소만(小滿)이었다. 입하와 망종 사이의 절기로 작은 것(小)들이 점차 자라 가득 찬다(滿)는 소만. 이 무렵 농촌 들녘은 모내기로 바빠지고 김매는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초여름 정취가 한껏 깊어지고 작약이 흐드러진다. ▼매년 이맘때면 원로가수 고(故) 백설희씨의 '봄날은 간다'가 가슴을 파고든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 조사'에서 1위로 꼽힐 정도로 시(詩)적인 가사와 애달픈 멜로디가 일품이다. 70년 가까이 사랑받으면서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 곡을 남겼다. 1절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절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로 끝날 때 묘한 여운이 남는다. 절절한 톤으로 부르는 장사익·최백호의 노래가 돋보이고, 주현미가 '7080콘서트', 린이 '복면가왕'에서 부른 애절한 곡조의 '봄날은 간다'도 압권이다. ▼봄날이 갈 때쯤이 우리 조상들에게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가을걷이의 희망을 꿈꾸면서 모내기를 하지만 50년 전까지만 해도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 길을 힘겹게 넘는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미스터트롯'에서 14세 소년 정동원이 불렀던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도 가슴에 와닿는다.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어머님 설움 가득한 한(恨) 많은 보릿고개 길을 잘도 소화한 정동원의 노래에 가슴이 울컥한다. ▼올봄은 코로나19와 함께 왔다. 코로나19를 이겨내자고 알뜰한 맹세를 했건만 이태원발(發) 집단감염으로 실없는 기약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컸다. 그러나 위기 때 빛나는 국민의 저력으로 우려를 잠재우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보릿고개를 넘고 또 넘었듯이 힘겨울수록 소소(小)한 것에도 만족(滿)하면서 연대의 힘을 발휘하면 코로나19 고개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넘으면 반드시 평탄한 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코로나19가 봄날과 함께 물러가기를 빌어본다.
심은석 사회부장·es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