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천의 산천어가 코로나19가 불러온 '뉴노멀'의 위기를 집어삼켰다.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일상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올해 산천어 얼음낚시 체험은 열리지 못했다. 이에 화천군은 폐기될 처지에 놓인 수십 톤에 달하는 산천어를 가지고 식품화에 도전했다. 지난 2월1일 산천어를 주재료로 한 가공식품이 첫선을 보였고, 나흘 만에 66톤의 제품이 1차 완판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국내 겨울축제의 새로운 위기극복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산천어 식품 산업화 도전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직격탄 맞은 '화천산천어축제' 전화위복의 노력 결실
살코기 캔·통조림 등 출시 나흘 만에 66톤 1차 완판
백화점·홈쇼핑·대기업 판로 개척 다채널 마케팅 적중
겨울축제 롤모델 제시…최문순 군수 “소비자들에 감사”
■위기와 함께 찾아온 기회
코로나19 여파에 올해 화천산천어축제는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했다.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직접경제효과도 소멸됐고, 장병 외출·외박 제한에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까지 겹치며 화천의 지역경제는 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화천군은 위기를 낭비하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산천어축제의 무대를 겨울 한철 얼음판 위에서 사시사철 안방의 식탁으로 넓히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산천어의 '손맛'이 아닌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식재료로서 산천어의 성공 가능성을 살펴 왔다. 그리고 다방면의 검토를 거쳐 지난해 12월 “2021년을 산천어 산업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산천어의 드라마틱한 변신
2021년을 산천어 식품 산업화의 원년으로 선포한 화천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곧바로 제품 생산을 위한 회의를 연이어 개최하며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 결과 저장성이 뛰어난 반건조 산천어, 통조림, 어간장, 어묵, 밀키트 등 소비자가 직접 기호에 맞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제품군이 후보로 떠올랐다.
방향이 정해지자 화천군은 곧바로 제품 개발과 시제품 생산에 착수했다. 상서면 풍산리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산천어 건조를 위한 덕장으로 조성했고, 일자리 예산을 투입해 지역 주민들을 산천어 손질과 건조작업에 투입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30일, (재)나라에서 산천어 식품 시식회가 열렸다. 서울의 유명 셰프 등 레시피 개발에 참여한 전문가 그룹은 반건조 산천어의 살성이 좋아 원형이 잘 유지되고, 다른 민물생선과 달리 잡내와 흙내가 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후 화천군은 산천어 통조림 개발로 눈을 돌렸다. 화천산천어축제에 오랜 기간 후원사로 참여해 온 국내 한 식품 대기업의 도움으로 OEM(주문자위탁생산) 방식에 의한 통조림 생산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화천군은 수차례에 걸쳐 포장 디자인을 마련하는 동시에 왕복 10시간 거리에 위치한 통조림 제조공장을 수차례 오가며 제품 생산에 매달렸다.
■“산천어를 팝니다”
제품 생산을 마친 화천군은 홍보와 판매 프로모션에 화력을 집중했다. 소비자에게 생소한 산천어 식품을 효과적으로 알려야만 판매 실적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원도의 도움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최문순 지사가 최문순 화천군수를 돕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다.
동명이인인 최 지사와 최 군수는 한글, 한자 이름은 물론 본관까지 강릉 최씨로 같아 강원도 안팎에서는 '투-문순'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았다.
화천군과 강원도 그리고 롯데백화점은 올 1월14일 화천에서 유튜브 채널 '강원도'와 '강원장터TV', '롯데 100LIVE'를 통해 산천어 식품 라이브커머스 행사를 진행했다. 동시에 오프라인에서는 롯데백화점 노원점에서 산천어 밀키트와 구이용 선어 특판 행사가 열렸다.
산천어 밀키트는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당초 목표 판매량이었던 산천어 4톤이 조기에 소진됐고, 2톤이 추가로 투입됐으며 판매기간도 1월 말에서 2월18일까지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화천군은 홍보에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종합편성채널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산천어 식품을 소재로 1시간 특별 생방송을 편성했다.
또 공중파에서는 설 전날인 지난 11일 전국에 산천어 식품 산업화 현장을 소개했으며, 구독자 300만명이 넘는 파워 유튜버까지 동원해 산천어 요리 '먹방'을 연출했다. 이외에도 공영 홈쇼핑을 비롯, 국내 대기업 구내식당 등 대형 납품처를 발굴해 산천어 식품 공급에 나섰다.
■산천어, '金천어'가 되다
화천군은 생산 완료된 산천어 묵은지 통조림과 살코기 캔, 어묵 그리고 반건조 제품으로 종합선물세트를 구성해 지난 1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제품 판매 나흘 만인 5일 (재)나라 창고에 쌓여 있던 모든 산천어 식품 재고가 바닥났다.
지역 안팎의 기관·단체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졌고 연일 엄청난 물량의 산천어 식품이 택배차량에 실려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양식장에 남아 있던 산천어 77톤 중 약 66톤의 산천어가 모두 팔리거나 납품계약이 이뤄졌다.
지난 18년간 화천산천어축제를 찾았던 수많은 사람은 이 기간 '어제의 관광객'에서 '오늘의 소비자'로 변신해 산천어의 도전을 응원했다.
미래의 잠재적 관광객들에 대한 화천산천어축제 홍보 효과도 컸다. 화천군은 남아 있는 10톤가량의 산천어로 살코기 캔을 추가 제조해 이달 하순 2차 판매를 준비 중이다.
■다시 한번 겨울축제의 롤모델이 되다
산천어 식품 제조와 성공적 생산은 2003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화천산천어축제가 첫 회부터 22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은 것에 비견될 만큼 화제가 되고 있다. 겨울철 레저 활동의 무대를 스키장에서 얼음판으로 확장한 화천산천어축제가 또다시 얼음낚시 축제 콘텐츠를 단순체험에서 '사계절 즐기고 맛보는 이벤트'로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향후 비슷한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이는 다른 축제들보다 탁월한 경쟁력과 노하우를 확보했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건조장에서 반건조 산천어 제조에 땀 흘려 준 군민들, 제품 홍보와 판매를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현장을 뛰어다녔던 공직자들, 무엇보다 산천어 식품을 선택해주신 소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화천=장기영기자 kyjang3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