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타푸르 옛 왕궁의 밤이 깊어질 때까지 우리들의 회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건은 하나였다. 카트만두 서쪽 200㎞ 떨어진 곳에 자리한 포카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갈 것인가가 안건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보통 30여분 걸리는 비행기를 이용했다.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로 가면 그때그때의 도로 여건에 따라 길게는 10시간, 짧게는 7~8시간이 걸리는 육로를 이용할 까닭이 없었다.
물론 비행기와 자동차의 요금 차이도 어마어마했는데 문제는 비용이 아니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향하던 여객기의 추락사고 때문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가 다름 아닌 바로 그 항공사였다. 그렇다고 포카라행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이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갈 것인가. 한국의 고속도로라면 길이 막히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자동차의 허용속도를 감안할 때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심야의 드라이버라면 삼십 분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네팔의 고속도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터널이 없는 고속도로였기에 높은 산이 나타나면 고갯마루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내려와야만 하는 길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벼랑길이었다. 게다가 도로를 수리하는 공사는 오래전부터 늘 이곳저곳에서 진행형이었다. 지구촌 뉴스에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쩌면 하늘길보다 산을 넘고 또 넘는 육로가 더 위험했다. 그런 길을 대절버스를 이용해 거의 하루 낮을 달려가야 한다고 하니 우리들의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3박4일 걸어가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이크로버스를 대절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마침내 아침 일찍 카트만두를 떠났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은 없었지만 나로서는 포카라로 향하는 두 번째 버스여행이 당연히 흥미진진했다. 왜냐하면 시외버스를 타고 처음 포카라로 갔던 먼 길의 경험을 소설로 쓴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옛 애인들을 싣고 달리는 버스’였다. 신혼여행을 떠난 소설의 주인공은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옛 애인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낯선 이국, 중도에서 내릴 수도 없는 산골 마을을 달리는 버스, 더군다나 신혼여행 도중에 만난 옛 애인들의 공격에 오도 가도 못 하는 찌질한 사내의 이야기가 대충의 줄거리인 소설이다. 물론 그 모든 게 사내의 환상인 그런 소설이었는데 다시 그 길을 지나간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나는 내 소설 속의 그 길, 아니 엄연히 현실인 그 길을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무엇이 아직도 그대로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게 풍경이든, 마음이든, 옛 애인들이든 상관없이. 무엇보다도 내 모습이 보고 싶었다. 아직도 여전히 사랑의 뜨거운 볼에 닿기 무섭게 화들짝 놀라 녹아버리는 봄날의 눈송이처럼 찌질한지...... 그 확인은 눈 덮인 히말라야를 오른쪽에 두고 30여 분 동안 감상하며 날아가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에선 결코 가능할 수 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버스를 이용해 포카라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또 멀었다. 카트만두 분지를 넘어가는 큰 고갯길은 여전히 곳곳에서 공사 중이었다. 차량들은 줄을 이었고 흙먼지가 진동해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한쪽은 산비탈이었고 다른 한쪽은 까마득한 벼랑이었다. 산자락을 돌 땐 사타구니가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어느 곳에선 아예 길이 막혀 불도저가 길을 뚫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네팔 사람들은 느긋했다. 차에서 내려 용변도 해결하고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길은 언젠가는 뚫린다는 표정들이었다.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는 건 언제나 이방인들이었다. 차 안에 갇힌 이방인들은 점점 더 자주 하늘을 바라보았고 버스 안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으려고 헛손질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길이 뚫리면 다시금 먼지, 먼지, 마른 진흙먼지가 뽀얗게 피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카트만두를 떠난 지 고작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이미 포카라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던 봉고트럭의 지붕에 캐리어를 실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계곡으로 흐르는 트리슐리강의 물소리처럼 즐거웠다. 휴게소에서 구입한 캔맥주를 마시며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짐을 가득 싣고 달리는, 알록달록한 페인트칠을 한 트럭들. 관광버스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현지인들. 길옆에서 옥수수를 껍질째 구워 파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산골사람들. 트리슐리강을 가로지르는 아득한 출렁다리들. 산자락의 계단식 논과 밭, 그리고 집들. 그 모든 풍경들은 내 고향 대관령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신작로 옆에 서서 코를 훌쩍거리며 대관령을 오르내리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저 자동차는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도 저 차를 타고 어디 먼 곳으로 무작정 떠나고 싶다. 그 아이가 마침내 어른이 되어 오래전 풍경 속의 어느 아이를 차창 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트리슐리강이 내려다보이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달렸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그렇게 여덟 시간을 덜컹거린 뒤 포카라에 도착했다. 허리와 엉덩이가 아팠고 목은 칼칼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나의 무서운 옛 애인들이 따라 내리지 않은 것에 적이 안심했다. 아니, 다소 섭섭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내 소설 속의 찌질한 주인공에게서 한 발짝도 떠나오지 못했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게 과거의 나이고 더불어 미래의 나였다. 추락하지 않고 그걸 확인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저 멀리 눈 덮인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가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나 대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아마 나는 그 모든 부끄러움을 짊어진 채 며칠 뒤 나무 한 그루를 찾아 히말라야의 어느 깊은 골짜기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처음 포카라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들었던 사랑기 연주자의 애절한 음악을 떠올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