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랴오닝성 단동시 진흥구. ‘진주떡방(金珠打糕)’에서 새어 나오는 구수한 떡 내음은 새벽마다 골목을 가득 채우곤 한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통 너머로, 쌀가루와 앙금, 쑥, 단호박으로 정성스럽게 빚은 떡들이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 최대 국영방송사인 CCTV의 추천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한 이 곳의 떡은 단순한 간식 그 이상이다. 우리 민족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떡방을 운영하는 김화(金华·59) 씨는 떡 명인으로 불린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손맛을 지켜가는 그의 하루는 새벽 4시, 어둠이 채 걷히기 전부터 시작된다.
“떠돌기보다 뿌리 내리는 길을 선택했죠.” 김화 씨는 1995년,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서울 사당동의 식당에서 힘든 시절을 버티던 중, 동네 떡집 앞을 지나며 깨달았다. “아, 나 이거 좋아했었지…. 다시 해보고 싶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떡을 만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떡을 빚는 고된 작업도 오히려 즐거웠다. “기술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고 또 연구하면서 배워나갔습니다.”
10년 간의 한국 생활을 마친 뒤, 그는 다시 단둥으로 돌아왔고 벌써 12년째 떡방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들이 한국과 일본 등지로 흩어져 있는 현실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 열었다고 한다. 그는 “떡은 저에게 가족을 모이게 한 음식”이라고 말한다. 김화 씨의 떡은 단순한 ‘전통 재현’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에 뿌리를 두되,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된 결과물이다. “요즘 젊은 층은 전통 떡을 잘 몰라요. 눈에 보기에 예쁘고 맛도 익숙해야죠. 그래서 꽃떡 등 다양한 떡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그는 중국 소비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맛과 질감을 연구해 하루에 30여 가지 종류의 떡을 만들어낸다. 모든 재료는 자연산이다. 단호박은 찌고, 쑥은 삶아 쌀과 함께 직접 빻는다. “중국인들도 떡을 조선문화라고 인정합니다. ‘조선떡’이라고 부르면서 자주 사 가세요.”

2호점까지 문을 열었으니 이제 돈을 제법 벌었겠다 물었다. 하지만 그는 돈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요즘은 떡문화를 알리는 일이 더 즐겁다고 답했다. 단순한 판매를 넘어, 이제는 떡문화 교육에 전념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전엔 돈 벌려고 가게를 했다면, 지금은 떡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역 학교나 유치원, 회사 교육 요청, 인터넷을 통한 강의 요청 등에 응하며, 직접 떡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은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다. “유치원 애들에게 교육을 하면 너무 재미있어요. 떡으로 웃고 떠들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통도 배우게 되는 거죠.”
김화씨는 지난 2020년 ‘조선족 비물질문화유산 전승자’로 선정됐다. 이는 단순한 칭호가 아니라, 조선족으로서 민족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가는 ‘문화 보존자’로서의 책임을 의미한다. 그는 앞으로도 중국 내에서 조선 떡문화를 알리고, 젊은 세대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연구를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떡을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저만의 사명감이 생겼어요. 조선족으로서의 뿌리를, 떡이라는 매개로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습니다.(웃음)”
중국 단동시=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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