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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백골의 진격, 38선을 넘다]필사즉생의 정신…“그저 죽기살기로 싸울 뿐이었다”

6·25 당시 3사단 수색대 ‘참전용사’ 손용태씨
1950년 10월1일 국군 최초 38선 돌파 완수
“후퇴도 전진도, 조국 위해 명령대로 싸웠다”
“사람들 기억 속 잊혀지는 건 안타깝다” 토로

◇1950년 10월1일 당시 육군 제3사단 수색대 소속으로 38선을 돌파, 북진을 감행했던 6·25 참전용사 손용태(93)씨.

“젊었으니 뭐…그냥 죽기살기로 밀고 싸웠지”

1950년 10월1일, 38선을 최초로 돌파해 북으로 진격했던 3사단 수색대 출신 손용태(93)씨는 기억을 더듬으며 이 같이 말했다.

제77주년 국군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춘천에서 만난 손씨는 당시를 “젊었으니까 죽는 것도 모른 채” 치열하게 싸웠다고 회상했다.

포탄과 총탄 속에서도 앞장서 수색하며 길을 터주면 뒤따르던 아군이 진지를 잡았다. 포항에서 출발해 양양을 넘어 원산까지 진격했던 날들의 기억은 선명했다. “고지를 하나 점령하면 만세 부르고 저녁엔 잔치하듯 웃기도 했지”라며 승리의 순간이 전장 한복판의 위안이었음을 전했다.

◇6·25 참전용사 손용태(93)씨가 당시 중공군을 몰아내고 승리했던 기억을 되짚어 설명하고 있다.

전투의 기억에는 전우의 죽음도 함께였다. 중공군을 몰아내고 전선을 밀어붙였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놈들이 도망칠 때 따라가서 쏘기도 했지, 그때는 그냥… 제대로 싸웠다”는 말에는 조국을 지켰다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전쟁은 가족을 갈라 놓았다. 개성 출신인 그는 전쟁 이후 가족과 생이별했다. 남쪽으로 혼자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그 날부터 고향의 얼굴들을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제일 보고 싶다”는 말처럼 이산가족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후퇴할 때도, 다시 밀고 들어갈 때도 우린 그저 주어진 대로 했다”는 그의 담담한 고백 뒤에는 굴하지 않는 기개가 배어 있었다. 자다가도 포탄 소리에 벌떡 일어나 진지를 정비했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젊었으니까 죽는 것도 몰랐지”라는 말처럼 두려움보다 오직 임무와 동료가 앞섰다.

고령인 그는 전우회 모임에 자주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한 번 갔던 적은 있지만 다들 연로해지고 모임도 줄었다”는 말에는 전우들과의 연결이 약해지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끝으로 그는 전쟁의 의미를 후대가 잊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우리가 피땀 흘려 지켰던 나라가 지금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면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는 건 안타깝다”고 말했다.

◇6·25 참전용사 손용태(93)씨가 당시 승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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