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속철도는 교통·문화, 경제 혁명의 주역”
2010년 우리나라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KTX-산천이 상업운행에 성공하며 세계 네 번째 고속철도 기술보유국 반열에 올라섰다. 고속철도는 전국 방방곡곡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는 교통 문화혁명이며 국토의 발전과 지방경제 활성화에 앞장설 교통수단이다. 강원일보는 창간 80주년을 맞아 ‘수도권 강원시대’를 열어갈 도내 고속화철도 사업의 현황을 집중 조명한다.


■[르포]‘서울~춘천~속초 99분’…철도 혁명 현장을 가다=지난 16일 본보 취재진들은 춘천~속초 동서고속철도 1공구(춘천시 근화동~신북읍) 공사현장을 찾았다. 춘천 우두동 현장에 도착하자 깊이 62m, 직경 18m 규모의 지하 수직 터널이 취재진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땅 위에 생겨난 ‘블랙홀’ 같았던 이 터널은 지하철도 비상 상황 발생 시 승객 대피와 연기를 배출하는 초대형 환기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분간 수직 터널을 내려가자 거대한 지하갱도가 펼쳐졌다. 동쪽(속초 방향)으로 600m 전방에는 원통형 회전식 터널 굴진기인 ‘그리퍼 TBM’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130m·직경 11.6m의 그리퍼는 하루에 8~9m씩 전진하며 지하터널 5.3㎞ 구간을 뚫는다. 소음과 진동, 분진 등의 발생이 적고 안전성이 높아 각광받고 있는 장비이며, 국내에서는 투입 자체가 이례적인 첨단 공법이다.
같은 시각 춘천시 근화동 스카이워크 인근에는 강원지역 최초의 하저(河底)터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현재 의암호 수면 위에는 도로 형태의 임시 구조물인 ‘가몰막이’가 설치돼 있다. 강 밑에 길이 995m 터널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가 꿰매진 셈이다. 이날 찾은 하저터널 공사 현장에서는 토사 붕괴, 지하수 유입 등의 위험을 방치하기 위한 ‘흙막이 가시설 및 굴착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기초 작업이 끝난 뒤 올 11월부터 의암호 지하를 40∼50m 깊이로 파 내려가기 위한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하저터널이 완성되면 가물막이는 완벽히 철거돼 의암호의 아름다운 절경이 유지된다.
지하와 수중을 통과하는 춘천 1공구는 동서고속철도 전체 93.7㎞ 구간 중 최고난이도 구간으로 꼽힌다. 또 경춘선(ITX)의 ‘종착역’이었던 춘천역이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거듭날 상징적인 구간이기도 하다. 춘천, 화천, 양구, 인제, 백담, 속초역을 통하는 동서고속철도는 춘천을 기준으로 화천까지 8분, 양구까지 15분, 인제까지 23분, 백담역까지 30분, 속초까지는 39분이 소요된다. 서울 용산에서 속초까지는 99분 만에 연결된다.
HJ중공업 허철균 제1공구 공무팀장은 “교통은 경제 발전과 지역 주민의 생활 편의, 관광 활성화를 잇는 원동력”이라며 “공사 난도가 높은 만큼 안전하고 빈틈없이 공사에 철저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道 철도 르네상스 시대…현황과 과제=강원도가 ‘철도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와 남북 및 동해안 연계를 강화할 ‘강릉~제진 동해북부선’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다. 두 노선 모두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어 그동안 ‘교통 오지’로 불리던 강원도의 철도 지형이 급변할 전망이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는 서울과 동해안을 잇는 중책을 맡으며, 총연장 93.85㎞, 사업비 2조9,797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강원도는 이를 통해 ‘수도권-동해안 1일 생활권’ 실현과 함께 지역 관광 및 물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춘천·속초 등 주요 도시의 역세권 개발 및 배후 산업단지 조성도 추진 중이다.
강릉~제진 동해북부선은 남북을 잇는 한반도 동해축 철도의 핵심 구간으로, 총연장 111.7㎞, 사업비 3조4,708억원이 투입된다. 강릉에서 고성 제진까지 이어지는 이 노선은 남북 및 대륙 철도 연결의 전초기지로 꼽힌다.
남측 강릉~제진 구간과 북측 금강산~두만강 구간이 연결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북한을 거쳐 러시아·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물류 루트가 완성된다. 현재 전 구간 공사가 진행 중이며, 고성·양양 등지에서는 교량과 터널 굴착 작업이 한창이다.
두 사업은 강원도의 철도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핵심 프로젝트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핵심 쟁점으로는 사업 속도 관리와 안정적 예산 확보가 꼽힌다. 두 노선 모두 2027년에만 필요 예산이 1조 안팎으로 책정된 대형 SOC 사업으로, 연차별 국비 배정이 지연될 경우 공기(工期)가 늘어날 위험이 있다. 일부 구간에서는 환경영향평가 보완과 토지 보상 협의 지연으로 인한 공정 차질 우려도 제기된다.
국가철도공단과 강원도 관계자는 “사업 추진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인허가 협의와 토지보상 등 제반 절차를 차질 없이 이행하고, 적정 사업비를 확보해 계획된 시기에 개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만드는 길, 강원의 미래로”=나라의 숨결을 이어주는 철도. 굽이진 산맥을 헤치고, 바닷길을 잇는 이들의 손끝에서 오늘도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 본보 취재진은 ‘길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 미래를 개척하는 철도 건설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제1공구를 총괄하는 HJ중공업 최창일 소장은 강원 내륙과 해안을 잇는 사명으로 현장을 지킨다. 그는 “산악지형이 이어지는 까다로운 구간은 작은 균열 하나가 전체 공정에 영향을 준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반 상태를 점검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속초까지 철길이 닿는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 연결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권과 경제권이 하나로 묶인다는 의미”라며 “이 길이 완성되면 강원도민 누구나 더 가까운 속도로,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모든 인력이 한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전했다.
강릉~제진 철도건설 1공구를 맡은 계룡건설산업 김철호 소장은 동해안의 새로운 교통축을 만드는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드러냈다.
김 소장은 “새로운 철도를 건설하고 연결하는 일은 단순히 길을 만드는 것을 넘어 국가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돕는 일”이라며 “우리가 수행하는 사업이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 교통 편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또 “동해안 교통축을 구축하는 최일선에 있다는 자부심만큼, 안전관리·품질·조직 운영 등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동해안 철도 연결의 한 축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완성도 높은 현장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