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4월23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마좌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죽왕면·토성면·간성읍 일대로 삽시간에 확산됐다. 아직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과 그 이후를 들어봤다.
■거센 불길 주민들 생활터전까지 삼켜=“산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무가 펑펑 터지는 소리와 불길이 바람처럼 번져 밤새 뜬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산이 죽은 줄 알았어요.” 강풍과 극도로 건조한 날씨 속에 불길은 능선을 넘나들며 사흘간 3,762㏊의 산림을 태웠다. 산림과 마을의 경계는 무너졌고 불길은 주민들의 생활터전까지 삼켰다. 당시 산불 대응체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순했다. 좁은 산길, 부족한 진화 장비, 체계화되지 않은 대응 시스템은 거센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헬기 투입은 제한적이었고 초동 진화 인력과 장비는 불길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산불 대응 매뉴얼은 지금처럼 세분화되지 않아 구조적 대응이 어려웠다.
■송두리째 빼앗긴 삶=불길이 급속히 확산된 원인으로는 반복적으로 지목된 양간지풍, 송진이 많은 소나무 밀집 지역, 험준한 지형이 꼽힌다. 이 조건들이 겹치며 불은 마치 폭발하듯 빠르게 산 능선을 타고 이동했다.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주택 92동, 부속사 89동, 축사 46동, 가축 718마리, 사료 1,776점, 과수 2만1,052그루,농기계 1만7,745대, 집기류 1만2,133점 등의 재산피해와 14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토성면·간성읍의 자연산 송이버섯 산지는 초토화되며 1만6,215㎏의 송이가 소실, 지역 주민의 주요 소득원이 사라졌다. 고성군 간성읍 탑동1리 윤찬오 이장은 그날을 떠올리며 “그냥 불이 지나가길 멀리서 넋 놓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대형 재난’ 인식 전환점=당시 탑동리 30가구의 주민들은 모두 임산물로 생계를 이어가던 터라 산불로 먹고 살 길이 한순간에 끊겼다 산불 한 번에 먹고 살 길이 한순간에 끊겼다. 주민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 서로 보증을 서며 버텼지만, 이후에도 수해·태풍 등 자연재해가 이어지면서 결국 수십억원의 빚을 떠안은 가구도 생겼다. 당시 산불은 ‘대비해야 할 재난’이 아니라 ‘발생하면 일단 끄고 복구해야 하는 사고’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6년 고성 산불은 단순한 계절성 지역적인 사고가 아닌, 언제든 국가적 대형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요소로 인식하게 만든 전환점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