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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산이 타는 소리 밤새 멈추지 않았다”…산불이 남긴 건 수십억 빚더미

[강원 산불 30년…잿더미에서 숲을 찾다]1996년 고성 산불
산불대응체계 미흡 강풍 타고 번지는 거센 불길 진화 역부족
당시 임산물 주소득인 간성읍 탑동리 주민 한순간 생계 끊겨
산불 단순한 계절성사고 아닌 국가적 재난 위험 인식 전환점

◇ 1996년 고성 산불은 양간지풍, 송진이 많은 소나무 밀집 지역, 험준한 지형 등의 영향으로 불길이 급속하게 확산됐다. 산불 대응 매뉴얼은 지금처럼 세분화되지 않아 거센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강원일보DB.

1996년 4월23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마좌리에서 시작된 산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죽왕면·토성면·간성읍 일대로 삽시간에 확산됐다. 아직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과 그 이후를 들어봤다.

■거센 불길 주민들 생활터전까지 삼켜=“산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무가 펑펑 터지는 소리와 불길이 바람처럼 번져 밤새 뜬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산이 죽은 줄 알았어요.” 강풍과 극도로 건조한 날씨 속에 불길은 능선을 넘나들며 사흘간 3,762㏊의 산림을 태웠다. 산림과 마을의 경계는 무너졌고 불길은 주민들의 생활터전까지 삼켰다. 당시 산불 대응체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순했다. 좁은 산길, 부족한 진화 장비, 체계화되지 않은 대응 시스템은 거센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헬기 투입은 제한적이었고 초동 진화 인력과 장비는 불길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산불 대응 매뉴얼은 지금처럼 세분화되지 않아 구조적 대응이 어려웠다.

■송두리째 빼앗긴 삶=불길이 급속히 확산된 원인으로는 반복적으로 지목된 양간지풍, 송진이 많은 소나무 밀집 지역, 험준한 지형이 꼽힌다. 이 조건들이 겹치며 불은 마치 폭발하듯 빠르게 산 능선을 타고 이동했다.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주택 92동, 부속사 89동, 축사 46동, 가축 718마리, 사료 1,776점, 과수 2만1,052그루,농기계 1만7,745대, 집기류 1만2,133점 등의 재산피해와 14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토성면·간성읍의 자연산 송이버섯 산지는 초토화되며 1만6,215㎏의 송이가 소실, 지역 주민의 주요 소득원이 사라졌다. 고성군 간성읍 탑동1리 윤찬오 이장은 그날을 떠올리며 “그냥 불이 지나가길 멀리서 넋 놓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대형 재난’ 인식 전환점=당시 탑동리 30가구의 주민들은 모두 임산물로 생계를 이어가던 터라 산불로 먹고 살 길이 한순간에 끊겼다 산불 한 번에 먹고 살 길이 한순간에 끊겼다. 주민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 서로 보증을 서며 버텼지만, 이후에도 수해·태풍 등 자연재해가 이어지면서 결국 수십억원의 빚을 떠안은 가구도 생겼다. 당시 산불은 ‘대비해야 할 재난’이 아니라 ‘발생하면 일단 끄고 복구해야 하는 사고’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6년 고성 산불은 단순한 계절성 지역적인 사고가 아닌, 언제든 국가적 대형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요소로 인식하게 만든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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