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 도이노음이요.” 1780년 여름, 연암 박지원이 청에서 겪은 일이다. 건륭제의 칠순 축하 사신단에 끼어 열하로 향하던 어느 밤, 낯선 발소리에 놀란 연암이 고함을 쳤다. “이놈, 누구냐?” 이 때 문밖에서 돌아온 대답이 “도이노음이요” 였다.
어눌한 말투의 밤손님은 숙소를 순찰하던 청나라 병사였다. 자신을 도이노음 즉 되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동안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되놈 소리를 들었으면 스스로를 되놈이라고 칭했을까. 말 그대로 오랑캐 왕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던 조선 사신단의 속마음이 어떠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두 차례 호란을 겪으며 청에 무릎을 꿇은 지 140년이 지났지만 당대의 조선 사회는 여전히 ‘소중화’를 부르짖으며 신흥세력인 청을 낮추어보고 있었다.
얼마 전 초고본이 보물로 지정된 <열하일기>에는 이처럼 연암이 내지른 통렬한 사회비판이 생생하다. 북경의 화려한 거리와 처음 본 코끼리를 설명하는 자들에게 조선의 일류 선비들은 이렇게 면박을 먹인단다. “아무리 학문이 있다 해도 머리 깎고 변발을 했다면 되놈이다. 되놈이면 짐승일 터이니 개돼지에게 무슨 볼만한 것을 찾을까?” 이런 시큰둥한 반응은 <춘추> 좀 읽었다는 이류 선비도 다르지 않다. “청나라 성곽이란 진시황 만리장성의 나머지요, 궁실은 아방궁의 찌꺼기다. 명이 망하니 중국 산천은 날고기의 노린내를 피우는 고장이 됐다.” 선비들의 말 속에는 한족을 떠받들고 오랑캐를 멸시하는 유학자들의 풍모가 등등하다.
그렇다면 자칭 삼류 선비인 연암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중국의 장관은 깨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에 있소이다.” 깨진 기와처럼 하찮은 물건도 담에 문양을 넣을 때 쓰고, 냄새나는 똥오줌도 금싸라기처럼 거름창고에 반듯하게 쌓아두고 사용해 천하 문물제도의 으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거든 다 배워야 한다. 저들의 굳은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와 대적할 만한 뒤라야, 비로소 중국에는 볼만한 것이 없다고 다짐해야 옳다.” 연암은 함부로 얕잡아보고 낮추어보는 시선은 하수에 지나지 않음을 힘주어 말했다.
“소인 도이노음이요.” 최근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18세기 방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쟁쟁 울리는 것만 같다. 2026년 대한민국에게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과연 고루한 조선의 선비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최고 권력자가 불법 계엄의 근거로 부정선거를 거론하니, 한때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법조인은 그 배후로 중국을 지목한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중국인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며 입국을 금지시키자고 주장한다. 정치권의 비뚤어진 시각 탓인가, 쿠팡 사태의 원인이 중국에 있으니 미국 기업 쿠팡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이 등장하고, 서울 대림동 초등학교 앞에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시위마저 이어졌다. 한국은 더 이상 중국이라는 이웃 국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방어할 수 있는 대안은 마련되어 있는가.
적어도 지금처럼 기승전 ‘중국’의 공식이 반복된다면 답은 없다. 까닭 없는 ‘혐중’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고대부터 중국과 끊임없이 투쟁해온 한국만큼 중국을 자세히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어쩌면 우리를 오만과 나태의 늪에 빠지게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240년 전 연암은 발바닥이 터지는 고통을 견디며 중국을 답사한 뒤 ‘깨진 기와와 똥거름’마저 배우고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혹여 밉더라도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는 이용후생의 정신이다. 연암의 말이 옳다. 정치는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