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베트남 출장 중 건강이 악화돼 갑작스럽게 별세한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시신이 27일 오전 국내로 운구됐다.
이 전 총리의 시신을 싣고 베트남 호찌민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KE476편 항공기는 4시간 30분 만인 이날 오전 6시 53분께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해당 항공편은 전세기로, 유가족과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인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 같은 당 이재정·김영배·김현·이해식·정태호·최민희 의원 등도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상임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해 우원식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한병도 원내대표 등 영접 인사들도 오전 6시께 공항에 도착해 고인을 기다렸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이 전 총리와 55년 지기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고인의 귀국길을 찾아 침통한 표정으로 운구 과정을 지켜봤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이 전 총리의 시신은 오전 7시 13분께 비행기에서 내려진 뒤 계류장으로 옮겨졌다.
계류장에는 군 의장대가 도열해 약식 추모식이 열렸다.
육해공군 의장대가 시신이 안치된 관을 덮은 태극기를 조심스레 정리하는 와중에 일부는 활짝 웃고 있는 이 전 총리의 영정사진을 들고 서 고인을 기렸다.
의장대는 장송곡이 울리는 가운데 의장대장의 구령 아래 관을 들고 한 발씩 걸음을 옮겨 오전 7시 40분께 운구차에 고인의 관을 실었다.
도열해있던 영접 인사들은 의장대가 이동하는 동안 뒤에서 따라 움직이며 운구 과정을 차분히 지켜봤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장례는 기관·사회장으로 이날부터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정부는 유족 뜻을 존중해 이 전 총리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진행하되, 정부 차원의 예우를 갖추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기관장을 결합해 장례를 지원한다.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총리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민주평통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현지 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 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통하는 고인은 7선 의원 출신으로, 학생운동부터 시작해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4명의 대통령과 정치 행보를 함께한 '킹메이커'이자 민주당 대표로서 21대 총선의 압도적 승리를 이끄는 등 민주 진영 정치인들의 구심점으로 활동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덕수중·용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3년 10월 교내 유인물 사건에 연루돼 수배됐고,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쳤다.
출소 후에는 서울대 인근에 책방 '광장서적'을 개업하고,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하는 등 재야에서 운동을 이어갔다.
1980년 대학에 돌아온 그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그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고, 2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후 재야 입당파들과 평화민주당에 입당,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만 13대 총선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후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19·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1995년), 교육부 장관(1998년), 국무총리(2004년)까지 지방자치와 제도권 정치의 정점을 모두 경험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교육 개혁을 진두지휘했지만, '학교 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학력 저하 논란을 낳아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국무총리에 취임해 노무현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정착시켰다.
여의도 정치 무대에서는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정책을 맡았다.
소속 정당이 여야를 오가는 동안 총 세 차례 정책위원회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 진영의 전략 기획가로 활약해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0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때는 '민주당 20년 집권계획'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각별한 정치적 동지로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4∼2018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2020년 21대 총선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당 대표 임기 종료 후에는 여의도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고 동북아평화경제협의회 이사장을 맡았다. 지난해 10월 이재명 정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정치권에서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군사정권과 민주화 이후를 모두 경험하고 목도한 민주 세력의 상징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민주화 운동 세대 가운데서도 고(故) 김근태 전 장관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과 현실 제도권 정치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간 정치인으로 꼽힌다. 소신과 추진력이 강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깐깐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