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 뒤 증명된 도출신 문화기획자들의 실력과 산골 마을을 문화 기지로 바꾼 실험들은 하나의 결론을 가리킨다. 우리에게는 강원의 문화자원을 캐낼, 준비된 ‘문화광부’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뿌리내릴 ‘토양(시스템)’이다. 개인의 희생과 열정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강원도가 당장 단행해야 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언한다.
◇ ‘도돌이표 행정’ 멈추고 ‘축적의 시간’ 보장해야
현장의 기획자들이 꼽는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 부족이 아니라 ‘사람이 지워지는 행정 시스템’이다. 전문가가 새로 온 담당자에게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하는 소모적인 구조 속에서는 장기적인 비전이 싹틀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 전문관(전문임기제)’ 확대가 시급하다. 문화예술 부서만큼은 순환보직의 예외를 두거나, 장기 근무가 가능한 전문가 채용 비율을 대폭 늘려 행정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 ‘민관 거버넌스의 법제화’도 필요하다. 사람이 바뀌어도 시스템이 굴러가도록, 민간 예술감독에게 단순 자문이 아닌 예산 편성 및 집행의 ‘의결 권한’을 부여하는 실질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영수증 검사 대신 ‘실험’을 사라… 블록펀딩 도입
현재의 항목별 예산 통제와 1년 단위 정산 시스템은 기획자의 손발을 묶고 ‘안전한 행사’만 반복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묶음형 예산(Block Funding)’ 도입을 강력히 제안한다. 예산을 배정할 때, 사용처를 미리 정하지 않고 총액으로 지원해 현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운용할 자율권을 줘야 한다. 아울러 평가 방식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관객 수 중심의 결과보고서 대신, 과정에서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데이터로 남기는 '실험보고서' 제출을 공식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 실패를 자산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강원도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1년 살이’ 비정규직에게 미래는 없다… 다년 계약제
단년도 계약 관행은 기획자를 소모품으로 만든다. 화천의 극단 ‘뛰다’가 지역에 정착해 세계적인 레지던시를 만들기까지 10년이 걸렸던 것 처럼 문화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공공 축제나 예술 프로젝트 총감독 위촉 시 ‘최소 임기 보장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 예술가들이 결과물 압박 없이 지역에 머물며 연구할 수 있는 ‘과정 중심 레지던시’를 정책적으로 지원해, 예술가들이 강원도를 ‘창작의 베이스캠프’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화광부’는 예산을 쓰는 존재가 아니라, 소멸해가는 지역의 잠재력을 찾아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투자처’다. 실패를 용인하고, 시스템으로 뒷받침하는 강원형 문화생태계가 완성될 때, 떠나갔던 인재들은 돌아오고 강원도는 비로소 ‘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이재원 문화기획자는 “기업유치를 위해 건물을 짓는 예산으로 기획자와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집’과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활기만이 어쩌면 사람들을 (강원도로) 다시 불러모으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