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은 오래도록 축복과 저주의 얼굴을 함께 가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꿀은 신들의 음식이었고, 조선의 고문서에는 설탕이 약재처럼 기록돼 있다. 귀했던 만큼 절제도 따랐다. 그런데 오늘의 설탕은 흔해졌고 넘쳐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 억제, 그 부담금으로 지역·공공의료 강화에 재투자 ...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국민 1,03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0.1%가 설탕세 도입을 찬성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함께 공유했다. 대통령의 SNS 한 줄로 다시 무대에 오른 설탕은 이제 건강과 세금, 정치의 교차로에 섰다. 단맛을 덜어내자는 제안은 선명하지만, 그 칼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아직 흐릿하다. ▼‘이익에는 다툼이 따른다’는 말처럼 설탕세는 명분과 이해가 정면으로 맞선다. WHO의 권고와 해외 사례는 방패가 된다. 영국에서 설탕 음료가 줄고 함량이 낮아졌다는 성과는 분명하다. 담배세가 건강보다 세수의 이름으로 굳어졌듯, 설탕세도 목적과 결과가 어긋날 가능성은 상존한다. 단맛을 줄이자는 정책이 생활비를 키우는 장치로 변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설탕은 모두가 쓰지만, 부담은 고르게 떨어지지 않는다. 값이 오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저소득층이다. 동네 빵집과 소규모 식품업체는 대기업보다 완충 장치가 약하다. 대체 감미료의 안전성 논란까지 더해지면 정책은 쉽게 갈등의 불씨가 된다. 건강이라는 대의가 약자의 몫을 더 무겁게 만든다면 그 설계는 다시 그려져야 하지 않을까. ▼“임금의 말은 바람처럼 가볍게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대통령의 SNS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공직사회에는 신호로 작동한다. 설탕세가 공익이라면 방향이 중요하다.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약자를 먼저 살피는 순서가 빠져선 안 된다. 단맛을 줄이려다 민주주의의 쓴맛을 키우는 일, 그것만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