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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재가동인가, 전환인가 – 대안은 있는가?

-전력 넘치는 강원 동해안, 활용 못하는 현실…‘멈춘 에너지’에 미래를 묻다
-AI전력수요급증에 정부 신규 원자력발전소기 건설 입장전환
-현재 만들어놓은 화력발전소가동, 양수발전, 송전망확충… 잠든 에너지를 깨우것이 시급

“우리는 전기를 만들지만, 쓰지 못한다.”

강원도 동해안 에너지 현장의 자조적인 목소리다. 강릉, 삼척, 동해에는 수력·화력·가스 등 다양한 발전소가 들어서 있으나, 대다수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도암댐은 25년째 멈췄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은 석탄발전소는 송전망 부족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는 넘치지만, 정작 에너지는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AI 확산과 탈탄소 전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최근 재확인했다.

1.4GW급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를 각각 2037년과 2038년까지 준공하고 0.7GW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도 2035년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조만간 원전 부지 공모에 착수, 2030년대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규 원전 2기만으로는 AI 반도체, 로봇산업 등 신산업이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 부지 선정, 인허가, 주민 수용성 확보 등 절차를 고려할 때 준공 일정이 현실적으로 촉박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지금 있는 자원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강원 동해안의 현실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바로 ‘재가동’이냐 ‘전환’이냐는 문제다.

■인프라는 있지만 송전망이 없다=강원 동해안의 강릉에코파워(강릉안인화력), 삼척블루파워, GS동해전력 등은 2017년부터 202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도권과의 연결 송전망이 원활하지 않아 발전소 가동률은 기대에 못 미친다. 이는 해당 발전소 설립 당시부터 지적된 문제지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도암댐은 또 다른 사례다. 수질 문제로 25년간 수력발전이 중단된 채 방류만 반복되고 있으며, 기후위기와 맞물려 가뭄 리스크까지 키우고 있다. 주민 갈등과 환경 문제도 여전히 봉합되지 않았다. 정부가 비점오염 저감 예산을 확대하고 있지만, 실질적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석탄 선언…이후가 문제다=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탈석탄동맹(PPCA)’에도 가입했다. 국회 역시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원내 3당이 ‘정의로운 탈석탄법’을 공동 발의했다.

문제는 민간 석탄발전소의 경우 잔존가치가 높아 폐쇄 보상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기후솔루션은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자산정리 방안' 보고서를 통해 전국 석탄발전소 전체 폐쇄비용이 약 6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 가운데 삼척블루파워와 강릉에코파워의 폐쇄 비용만 약 3조7000억 원이다.

최근 가동을 시작한 강릉과 삼척의 민간 발전소는 투자 회수 기간이 채 시작도 되지 않은 만큼, 강제 폐쇄는 민간 기업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계획은 10년, 가동은 0년’…과거의 교훈=전력 수급을 둘러싼 이 같은 모순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2011년 전국 순환정전 사태 이후 정부는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동해안에 대규모 화력발전소 설립을 결정했다. 이후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허가와 착공에 들어갔고, 최종 가동은 2023년에야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송전망 구축이 미비해 '생산만 되고 활용은 되지 않는' 인프라가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발전소는 지역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했고, 강원 동해안의 전력 활용 가능성은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다. 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단순한 발전설비 증설보다 실질적 활용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해법은 ‘전력 활용 전략의 전환’=전문가들은 전력 공급 정책이 단순한 ‘생산’ 중심에서 ‘활용’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핵심은 기존 시설을 재가동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도암댐의 양수수력발전 재가동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 활용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양수발전소는 이러한 전환 전략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현재 국내에는 7곳의 양수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추가로 9곳이 계획돼 있다. 양수발전은 전력 저장과 유연한 공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ESS(에너지 저장장치) 도입 확대, 화력발전의 수소 연료 전환, 송전망 확충, 지역 분산형 전력 공급망 구축 등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 대안은 있는가=AI 반도체, 로봇산업, 전기차 등 전력 소비가 폭증하는 미래 산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선 정부의 결정 하나하나가 10년, 20년 후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내리는 결정이 또 다른 '에코파워 사태'를 낳을지, 아니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의 초석이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재가동’과 ‘전환’, 둘 중 하나를 고르기보다는, 이 둘을 조화롭게 엮어 강원 동해안 전력 인프라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실행 전략이 절실하다. 전력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전력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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