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56)가 선출됐다고 로이터·AFP통신 등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 전문가회의는 이날 이란 국영 매체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오늘 임시 회의에서 존경하는 전문가회의 대표들의 결정적인 투표를 바탕으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신성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제3대 지도자로 선출 및 소개했다"고 밝혔다.
전문가회의는 "긴박한 전쟁 상황과 적들의 직접적인 위협에도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며 신중하고 포괄적인 심의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란 국영 TV는 모즈타바가 압도적인 찬성표로 선출됐다는 성명을 낭독하며 국민들에게 그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또 테헤란 도심에서 시민들이 새 최고지도자 선출을 축하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또한 새 지도자 모즈타바에 충성을 맹세했다.
하메네이는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사했다. 이후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헌법기구인 88인 전문가회의가 소집돼 후계 구도를 논의해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서방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56세인 모즈타바는 이란 정치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이지만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수년간 아버지의 뒤를 이를 잠재적 최고지도자 후보로 거론돼온 중견 시아파 성직자다.
그는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지기 10년 전인 1969년 이란 내 이슬람 시아파 최대 성지중 하나인 마슈하드에서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모즈타바는 부친이 팔레비 왕조의 세습통치에 반대하는 혁명운동가로 성장하고 대통령에 오르는 등 권력을 쥐는 과정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봤다.
고등학교를 마치고서 1987년 최정예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입대,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후반기에 복무했다.
당시 부대에서 만난 혁명수비대 정보수장 호세인 타에브 등과 관계를 다졌고, 이후 이란 정보·보안 기관 내 핵심 인사들과 수십년간 교류하면서 막후에서 힘을 키우게 된다.
1989년 모즈타바 부친 하메네이가 사망한 초대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에 올랐고, 이후 모즈타바는 이란 중부 종교도시 곰에서 최고의 성직자들로부터 수학했다.
이때 본인이 직접 신학교에서 강의하며 종교 지도부와 인맥을 쌓았고,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신망을 얻었다.
하지만 모즈타바는 공직을 맡은 적도 없고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주로 막후에서 그림자처럼 권력을 행사해왔다.
2005년에는 강경 보수파 정치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당시 선거 과정 전반을 설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아마디네자드가 2009년 개혁파 지도자 미르호세인 무사비를 상대로 재선에 성공하자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때도 모즈타바의 배후 역할이 의심받았다.
당시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승계설이 돌자 일부 야권 운동가들은 "최고지도자가 되지 말고 죽기를 바란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후 2022년 히잡 시위가 이란 전국을 강타했을 때, 2024년 유력 최고지도자 후보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숨졌을 때도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승계설이 제기됐다.
이처럼 모즈타바는 하메네이의 후계자 후보로 오랫동안 언급돼 온 인물로 정예군인 혁명수비대와 정보기관 내 영향력도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습 통치를 비판해온 이슬람 공화국 체제에서 아버지를 이어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은 상당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세습 통치를 종식했다. 그런데 혁명 이후 선출직 공무원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쥔 소수의 시아파 성직자가 또다시 세습 통치를 시작하면 혁명의 대의가 무너졌다.
하메네이도 2024년 이란 전문가회의가 최고지도자 승계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을 때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측근을 통해 밝힌 바 있다.
특히 하메네이의 빈 자리에 그의 아들이 앉게 된다면 경제난과 민생고에서 촉발된 올해 초 반정부 시위에서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인 이란 국민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
다만 이란 내 강경파인 혁명수비대는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서 이란을 이끌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그의 임명을 밀어붙였다고 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NYT는 "모즈타바의 최고지도자 임명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강경파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다는 메시지이며, 당분간 변화가 거의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듭 '불가' 메시지를 냈던 모즈타바의 이란 최고지도자 승계가 발표되면서 일주일 넘게 계속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세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알리 하메네이보다 온건한 성향의 인사가 이란에서 친미 정부를 이끄는 '베네수엘라 모델'을 구상했으나,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하메네이 시즌2'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이란의 후계 구도에 자신이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의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Khamenei's son is unacceptable to me)"고 강한 어조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하메네이의 아들은 경량급"이라며 이같이 말한 바 있다.
이란이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용납불가'를 선언한 인물을 차기 지도자로 선택한 것은 결국 이번 전쟁에서 미국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도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세계 에너지 수송의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사실상의 봉쇄와, 미군기지 공격을 명분삼은 주변국 겨냥 공세 등으로 유가를 포함한 국제 경제에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미국이 장기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 이란의 구상이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부자 승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간의 발언으로 미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공세 고삐를 더욱 조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 발언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란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고, 무력 사용의 여러가지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로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전쟁의 부담 요인인 유가 우려는 '이번 작전이 끝나면 유가는 내려간다'며 일축했고, 국내 반대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또 그의 참모들은 이란을 공격할 화력 보급이 충분하다고 밝혀왔다.
특히 개전 직후 알리 하메네이의 거처를 급습해 그를 제거했던 '참수 작전'이 모즈타바를 겨냥해서도 재개될지에 이목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이란에서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고 발언한 데 이어 이날 ABC 방송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그(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다만, 이란도 이번에는 폭격이나 특수부대 투입을 예견하고 대비할 것으로 보이는 터라 개전 초 알리 하메네이 급습 때처럼 모즈타바 제거를 위한 군사작전이 전개될지, 감행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만약 작전이 실패할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데다, 이란이 차기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해 장기전으로 버틸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직면할 국내외 정치·경제적인 압박도 점증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 관련 미군 사망자가 이날부로 7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미군의 인명 희생 문제도 이번 전쟁에 대한 미국내 여론의 지지가 약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고심을 키울 수 있다.
결국 최고지도자 인선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이란이 사실상 걷어 찬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열흘째로 접어들게 되는 이번 전쟁은 단기간에 종결되기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