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물가, 고금리의 늪 속에서 서민 경제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산업 기반이 취약한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더욱 매섭게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절박한 시점에 강원자치도가 도(道)와 18개 시·군을 합쳐 상반기에만 총 8조 6,456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신속집행을 결정한 것은 시의적절한 결단이자 고육지책이라 평가할 만하다.
강원자치도의 이번 조치는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목표치보다 4,000억원 이상 상향된 공격적인 수치다. 김진태 지사가 밝힌 ‘상반기 중 70% 이상 조기 집행’이라는 목표는 사실상 행정력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를 쏟아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춘천, 원주, 강릉 등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도내 전역에 8조원이 넘는 혈세가 단기간에 풀린다면 이는 얼어붙은 지역상권에 온기를 불어넣는 강력한 ‘심폐소생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정의 조기 집행이 단순히 ‘돈을 빨리 쓰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산 집행의 핵심은 속도만큼이나 ‘효율’과 ‘방향’에 있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일회성 소모 사업에 치중한다면 예산 소진 이후에 찾아올 ‘재정 절벽’은 오히려 지역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도가 밝힌 대로 30억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사업을 중점 관리하되, 이것이 실제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과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는지 꼼꼼히 살피는 섬세한 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내년도 국비 확보 목표액을 10조7,000억원으로 설정한 것은 강원자치도의 미래를 향한 포석이다. 올해 처음으로 국비 10조 원 시대를 연 데 이어, 다시 한번 4.3% 증액된 목표를 세운 것은 고무적이다. 특히 SOC 분야의 포천~철원 고속도로, 제2경춘국도, 용문~홍천 광역철도 등은 강원의 고질적인 교통 오지 이미지를 벗겨낼 핵심 동력이다. 또한 반도체 소재·부품 거점 조성과 AI 기반 감염병 대응 플랫폼 등 미래산업 분야는 강원의 먹거리를 1차 산업에서 첨단 산업으로 체질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사업들이다.
문제는 국비 확보가 선언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10조원이 넘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사업 타당성과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강원자치도는 신속집행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동시에, 미래 산업의 기틀을 닦는 국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예산은 주민의 혈세다. 8조6,000억원이라는 거대 자본이 시중에 풀렸을 때, 그것이 일부 건설업자나 특정 계층에만 고이는 것이 아니라 골목상권과 서민 경제의 모세혈관까지 골고루 스며들어야 한다. 강원자치도는 집행 상황을 상시 점검하는 ‘신속집행 추진단’을 내실 있게 운영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