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이 사회 문제가 된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보이스피싱은 근절되지 않은 채 여전히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의 존재와 수법이 널리 알려져서 그 식상한 수법에 속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들의 곤궁한 처지나 절박한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전에 피해자에게 ‘당신의 계좌가 범죄조직에 이용되어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수사에 잘 협조하여 당신의 결백함이 확인되면 그대로 수사를 종결시키겠다. 당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보내라’는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한 보이스피싱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피해자에게 검찰총장이 청구하고 대법관이 발부한 허위의 구속영장 이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왜 이런 조악한 구속영장을 꾸며서 이용하였을까하는 의아함을 품었다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검찰총장과 대법관이라는 직위가 매우 큰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고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를 악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인상을 찌푸린 적이 있습니다.
이런 보이스피싱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피해자에게 연락할 휴대전화와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을 계좌, 즉 대포폰과 대포통장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조달하는데, 이 때도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소액의 이익을 약속하여 휴대전화를 개통하거나 계좌를 개설한 다음 이를 보내달라고 하거나 계좌의 경우에는 대출을 위한 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필요하니 계좌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요즘같이 개인정보가 중요한 세태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자기 이름으로 개통하거나 개설한 휴대전화와 계좌를 보지도 못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으시겠지만 의외로 있습니다. 휴대전화나 계좌를 넘겨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나머지 보이스피싱 조직이 제시하는 작은 금액의 유혹에 빠지거나 당장 급한 돈이 필요해서 대출을 알아보던 중에 대출에 계좌가 필요하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짓말에 그만 넘어가고 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름을 빌려준 대가는 참혹합니다. 약속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당연히 대출은 실행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전국의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게 되고 그 최종 종착지는 바로 형사법정입니다. 그나마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전달하였다는 것만으로 기소되면 다행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방조하였다는 것으로 재판을 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내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나 계좌를 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빌려주는 것만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간단한 일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른바 인출책을 꼬드길 때 하는 말입니다)만큼이나 허황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더구나 이름을 빌려준다는 것은 이름을 빌려준 동안 발생한 일에 대한 법률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이므로 작은 이익에 휩쓸려서 해줄 수 있는 쉽고 간단한 일도 아닙니다. 결국 이름을 빌려주는 일은 어느 모로 보나 그 대가는 크고 결과는 참혹할 뿐입니다. 이름을 빌려주는 일, 이는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