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춘자의 계절이다. 이른 봄엔 개춘, 초춘, 조춘, 맹춘으로 봄소식을 알리고, 봄이 무르익으면 사시장춘으로 봄날을 즐기다가 늦봄이 되면 만춘, 모춘, 잔춘으로 물러간다. 떠난 봄이 못내 아쉬울 땐 작춘, 거춘, 객춘으로 회상하고, 다시 돌아오는 봄은 회춘으로 반긴다. 누구나 인생이 늘 봄날 같기를 바라지만 무심한 세월은 속절없이 회춘을 꿈꾸게 한다.
춘자는 팔방미인이다. 친화력이 뛰어나 어느 곳에나 잘 어울린다. 이른 봄 매화를 만나면 춘매로 화장을 하고, 산을 만나면 춘산으로, 강은 춘강으로, 바람은 춘풍으로, 태양은 춘양으로 모두 자기편으로 동화시킨다. 모진 겨울을 견디며 봄을 맞이하는 춘자의 내면에는 소망이 은유되어 있다.
춘자는 사랑의 메신저다. 움츠렸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르면 온갖 미물들도 애정의 열락으로 몸살을 앓는다. 초목은 분분한 꽃내음으로 벌나비를 유혹하고 새들은 목청을 가다듬어 짝을 찾는다. 앞산에서 “뻐꾹”하면 뒷산에서 “뻐뻑꾹” 화답하며 그들만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에로스적 표현은 대부분 ‘춘’자 항렬이다. 춘심, 춘사, 춘정, 춘기 등이 그렇다. 사람도 태어나서 성징이 시작되면 사춘기라 부르고 성적으로 완성되면 청춘이라 한다. 인생의 춘삼월이고 춘자(春字)의 전성시대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중에도 금병산에 달큼한 동백향이 흐를 때면 춘자가 기지개를 켠다. 사춘기 가슴은 사정없이 콩닥거린다. 이렇게.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춘자의 생은 화려하지만 짧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 봄날도 청춘도 화롯불에 눈 녹듯 사라진다. 일장춘몽이다. 그러나 비록 잠간 만난 춘자지만, 오는 듯 가버린 청춘이지만, 그 찬란함은 평생의 에너지가 된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나오는 허생원은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 정분을 평생 못 잊는다. 그 황홀감을 이렇게 회상한다.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란 곳이 마음에 들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허생원에게 그 하룻밤의 춘정은 빛나는 청춘이었고 인생을 지탱해준 동력이었을 것이다. 춘자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전설이 된다.
춘자가 좋아 춘천에 산지도 어언 반세기가 넘었다. 누구에게나 무엇에나 한때 청춘은 있었다. 그때 그 시절 풋풋했던 춘자가 그리울 땐 경춘선 열차에 오른다. 춘천을 떠나면 사흘도 못돼 춘자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상사일까?
4월의 대지는 온통 춘의(春意)로 가득하다. 춘우가 촉촉이 내린 다음날, 춘양 좋은 아침들녘에 파란 풀싹이 쑥쑥 올라오면 지난날 탱탱했던 춘자(春字) 생각에 다시금 가슴이 뛴다. 젊음은 춘정이고 노공은 춘수(春愁)라지만 이맘때쯤이면 고목도 새순을 내고 회춘을 꿈꾼다. 어느 듯 빛바래고 단풍드는 인생이지만 절로 솟는 춘흥이야 어찌 막을 소냐. 돌아오라, 그리운 춘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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