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필자는 36세의 혈기 왕성한 나이에 지방의원에 당선됐지만, 당시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현실과 전문성 부족의 부담을 절감하며 재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지금은 유급제와 정책지원관 제도 등 의정활동을 뒷받침하는 장치들이 마련됐지만, 지역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지방의회 무용론이 들려온다.
이는 집행부를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원들의 전문성 부족과, 정책보다 인맥에 기대어 주권을 행사하는 주민들의 선택이 맞물린 결과다. 이제는 의원과 주민, 제도권 모두가 지방자치의 본질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지방의회 무용론의 근저에는 현행 정당공천제도의 폐해가 자리 잡고 있다. 본래 공천은 정당이 검증된 인재를 추천하는 보증수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공천은 중앙정치나 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충성도를 확인하는 통로로 전락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역 일꾼을 걸러내는 거름망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른 줄 세우기 수단이 된 셈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방의원들은 주민보다 공천권자의 눈치를 먼저 보게 된다. 지역 현안을 고민하고 자치입법 연구에 매진하기보다, 다음 선거를 의식한 행사 참석과 관계 관리에 급급해지는 것이다. 정당은 공천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전문성과 정책적 식견을 갖춘 인물을 엄격히 선별해, 공천이 곧 실력의 보증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의회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은 청년 정치인의 부재다. 미래 세대의 고민을 정책에 녹여내고,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젊은 정치 세대의 수혈이 절실하다.
2022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도 각 정당은 ‘청년’ 출마 우대에 주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초·광역의원 후보 30%를 여성과 청년에게 할당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국민의힘은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PPAT)을 실시했다. 정의당은 청년 후보에게 60% 가산점을 부여했다.
그러나 청년 출마 장려가 실제 의회 진입과 의정 역량 강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지방의회는 변화의 동력을 얻지 못한 채 과거 관행에 머물 수밖에 없다. 청년 정치인의 수혈은 지방의회에 새로운 시각과 역동성을 불어넣는 생존 전략이다.
지방의원은 이제 명예직이 아니다. 주민의 혈세로 보수를 받는 유급 공직자다. 따라서 “월급값을 해야 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주민의 대의기관으로 최선을 다해 온 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자치법규 제·개정이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충분한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은 주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의원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집행부를 견제할 안목을 갖출 수 있다. 공부하지 않는 의원 앞에서 집행부는 긴장하지 않는다. 견제받지 않는 행정은 결국 주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주민들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다. 그동안 지역 선거에서는 후보의 정책적 식견보다 누구의 지인인지, 경조사에 얼마나 얼굴을 비추는지가 지지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적 친분과 관성적 선택이 반복되는 한 지방자치의 질은 높아질 수 없다. 주민이 의원을 의정 성과로 평가할 때 지방자치는 바로 설 수 있다.
지방의회 무용론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은 책임 있는 공천으로 응답하고, 의원은 실력으로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주민은 감시자의 눈으로 지방의회의 성적표를 매겨야 한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라는 자동차가 바른길로 가도록 제어하는 브레이크이자,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핸들이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가 기댈 곳은 결국 일 잘하는 의회와 깨어 있는 시민이다. 이제 무용론이라는 비생산적 논쟁을 넘어, 실력 있는 의회와 현명한 주민이 함께 만드는 진정한 자치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