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환 작가는 DMZ를 그린다. 철책, 전망대, 금강산, 개마고원, 부친이 끝내 돌아가지 못한 고향 땅 황해도 장연군… 그의 머릿속에는 늘 분단의 풍경이 머문다.
그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만화·팝(POP)·애니메이션 등의 요소를 활용한다. 만화 이미지, 영화 캐릭터들을 화면 위에 자유롭게 배치하는 것은 무겁고 어두운 현실을 대중 가까이 끌어오려는 그만의 방식이다.
손 작가는 DMZ를 단순한 접경 공간이 아니라 동시대적 현실의 장소로 바라본다. 그는 전쟁·환경·젠더 문제가 세계 미술계의 주요 이슈로, 한국사회에서는 분단 역시 중요한 동시대적 의제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흘러 분단의 고통이 무뎌질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려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시민들이 잊지 않도록 계속 이야기해야 할 문제죠.”
손 작가가 처음부터 분단을 의식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그림을 시작하며 읽었던 최인호의 ‘광장''이 계기였다. 분단 현실을 다룬 소설 속 인물과 시대 분위기는 젊은 미술학도였던 그에게 와닿았다. “집안이 이산가족이었어요. 분단이나 통일 문제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였죠. 그림을 시작할 때 가장 동시대적인 문제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에게 분단은 돌아가지 못한 고향이자 해결되지 못한 상실감이다. 이산가족 1세대가 품고 살았던 상처는 2세대에게 이어지는 대를 잇는 고통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장 큰 건 상실감 같아요. 고향을 잃었다는 감정이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민주화 이전 손 작가는 시대 변화를 읽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메시지를 낸 작가다. 대표작 ‘타타타''는 1980년대 민주화를 염원한 민중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때만 해도 그림에 글씨를 넣는 시도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였다고 하더라고요. 비록 내용이 반정부적이라며 탄압도 받았지만, 그로 인한 이슈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돼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최근에도 그는 대중과의 접점을 잃지 않기 위해 젊은 세대도 흥미를 가질 만한 옛날 만화 캐릭터나 딱지본, 그리고 반공 트라우마의 산물이기도 한 1967년 괴수 영화 ‘대괴수 용가리'' 캐릭터 등을 차용, 분단이라는 메시지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닌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밝은 색채''다. “분단, 통일, 사회비판을 다루는 작품은 대개 어둡거나 강하고 무거운 메시지를 띠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제 작업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다루려 노력합니다. 혼색보다는 채도가 높은 밝은 색을 써 그림이 경쾌하게 보이게끔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밝은 색채의 이면에는 이산의 아픔을 보듬는 먹먹함이 깔려 있다. “이산가족 1세대가 겪은 상실감과 같은 고통의 감정을 2세대 작가들이 받아들이면, 그것은 곧 상처이자 트라우마가 되죠.”
작가는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조금 더 감상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그리는 것도 잃어버린 영토, 고향을 찾아다니기 위한 어떤 길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까닭에 남북 관계가 개선돼 통일이 된다면 무엇을 그리고 싶냐는 질문에 그의 목소리가 소년처럼 들떴다. “아주 좋아지면 분단 그림은 그만 그리면 되죠. 시국이 좋아진다면 북한에 직접 가서 전시도 해보고 스케치도 하고 싶습니다.”
오는 28일 그에게 전해질 ‘박수근 미술상''은 이렇듯 평생을 바쳐 시대의 상실감을 어루만져 온 그의 노고에 대한 위로이자 보상이 아닐까 싶다. “전혀 예상을 못 해 뜻밖이었습니다. 과연 내가 박수근 선생의 정신을 그려냈는가 고민해봤는데, 아마도 제 그림이 사회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고민했던 흔적, 즉 사회를 바라보는 서민적이고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선생의 정신과 맞닿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는 3년 전부터 동료 작가들과 함께 ‘무장지대''라는 그룹 전시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무장지대(DMZ)를 제외한 남북한 모든 지역이 전쟁을 준비하는 ‘무장지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평화에 대해 고민하는 전시입니다.”
언제쯤 은퇴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화가는 은퇴나 정년이 없어요. 어렸을 때 신문에 난 ‘화가는 정년이 없다''는 기사를 오려 벽에 붙여 두고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는 수상 기념 전시가 열린다면 군생활을 담았던 40년 전의 ‘추억록'' 연작과 세상을 놀라게 했던 ‘타타타'', 지금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관객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회고전을 열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평생 분단의 철책을 응시해왔지만 그의 붓끝은 한 번도 절망에 갇히지 않았다. 언젠가 아버지의 고향 길을 따라 개마고원의 거센 바람을 캔버스에 담는 그날까지, 손기환 작가의 밝고 경쾌한 예술적 실험은 정년 없이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