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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시대를 함께 꿈꾸었던 벗, 조일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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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철 전 국회의원

◇최욱철 전 국회의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속 모습은 금방이라도 “욱철아, 아직 할 일이 많다”며 내 어깨를 두드릴 것만 같았는데...

조일현은 단순한 정치 동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 청춘의 동지였고, 시대를 바꾸자고 함께 뜨겁게 꿈꾸던 벗이었습니다. 나는 30대 초반에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우리는 가진 것도, 배경도 넉넉하지 않은 젊은 정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겠다는 뜨거운 이상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컸습니다.

우리는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강원도도 더 이상 변방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서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강원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젊은 두 정치인의 뜨거운 맹세였습니다. 마침내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우리는 나란히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조일현은 전국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나는 영동 정치의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국회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강원 영동권 냉해 피해 당시 우리는 함께 농촌 현장을 뛰어다녔습니다. 농민들이 무너진 농지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모습 앞에서 조일현은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는 늘 말했습니다. “정치는 책상에서 하는 게 아니다. 농민이 울고 있으면 정치인이 먼저 흙길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냉해 조사 특위 활동을 하며 정부를 설득했고, 결국 농민들에게 예상보다 큰 보상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 성과보다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더 기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조일현은 현실 정치인이면서도 끝까지 이상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을 알아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는 말을 누구보다 먼저 했던 선견지명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북경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베이징의 매서운 겨울, 북경대 독신자 아파트에서 밤을 새워 대한민국의 미래와 강원의 발전을 토론하던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청춘이었습니다.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전국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고,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으며 끝없이 도전했던 사람. 수많은 상처와 정치적 굴곡 속에서도 다시 일어섰던 이유는, 그에게 정치가 권력이 아니라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세대의 우정은 아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2001년 조일현의 아들 영웅이와 내 아들 영도는 함께 중국 태산을 올랐고, 이후 두 사람 모두 해병대로 연이어 군 복무를 하며 또 다른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무엇보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사랑하는 아들 영웅이의 결혼식을 올해 말 앞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로서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겠습니까.

일현아, 정말 수고 많았다. 이제는 편히 쉬어라.

당신과 함께했던 청춘은 내 인생의 가장 뜨거운 시간이었고, 당신이라는 이름은 오래도록 강원의 정치사와 우리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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