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은 예부터 집안의 대들보에 비유됐다. 기둥이 삐걱거려도 지붕은 버티고, 서까래가 휘어도 사람들은 안에서 밥을 먹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부부 싸움을 두고 ‘칼로 물 베기’라고 했다. 그러나 물은 결국 돌을 깎는다. ▼지난해 강원지역 이혼 건수가 1997년 이후 가장 낮았다는 통계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60세 이상 부부의 이혼 증가다. 지난해 도내 이혼 건수는 2,783건으로 1997년 이후 가장 적었다. 도내 전체 이혼 건수는 2022년 3,117건에서 지난해 2,783건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부부 모두 60세 이상인 노년층의 이혼은 2022년 438건에서 지난해 518건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한 지붕 아래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 관계의 온도를 설명할 수 없게 됐다. ▼조선 후기 문헌에는 “백년해로(百年偕老)는 하늘이 정한다”는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체념도 함께 묻어 있었다.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이 버티던 사회에서 결혼은 사랑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지금 늘어나는 황혼 이혼은 그런 오래된 침묵의 반대편에 있다. 젊은 날에는 자식 때문에 참고, 먹고사는 일에 치여 미뤘던 갈등이 은퇴 뒤 달라진다. 얼굴을 마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춰뒀던 균열도 선명해진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다는 자부심이 어느 순간 “정작 나는 없었다”는 허기로 돌아오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혼인 지속기간 ‘30년 이상’의 이혼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오래 견딘 관계가 반드시 단단한 관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한 이불을 덮고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것일까. 과거에는 그 꿈을 숨기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지금의 노년층은 남은 시간을 위해 꿈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황혼 이혼의 증가는 차가운 통계이자 시대의 자화상이다. 누군가는 가족 해체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늦은 해방이라고 말한다. 이제 분명한 것은 예전의 혼인이 의무와 인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행복과 존중의 비중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