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를 기반으로 ‘어묵’이라는 한 길만 걸어온 ㈜서울식품(대표:전영철)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증 백년기업이다. 1984년 강원도 태백에서 출발해 41년간 꼬치어묵 하나로 국내 최대 생산기업의 자리에 올랐고, 미국·캐나다·호주·홍콩 등 전세계에 수출하는 글로벌 향토기업으로 성장했다. 73명의 직원이 일하며 연간 18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이 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 연간 수출량을 올해 상반기 만에 이미 넘어서며 폭풍 성장 중이다. ‘소비자와의 약속’을 41년간 지켜온 서울식품의 백년기업 도전기를 들여다봤다.
■탄광촌에서 싹 틔운 어묵의 씨앗, 원주에서 꽃피다=서울식품은 1984년 태백에서 시작됐다. 창업자 전영철 대표는 동해 출신으로 어획량이 풍부하던 고향 바다에서 저렴하게 유통되던 생선이 한 상자에 300~500원이면 쓸모없이 버려지는 광경을 보며 “이걸 어묵으로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탄광 지역 광부들의 식탁에 어묵이 빠지지 않는다는 조사도 뒷받침됐다. 동생 셋을 불러 모아 공장을 꾸렸고, 창업 1년차에 태백 등 탄광 지역으로 공급망을 넓혔다.
그러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광산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판로가 급감했다. 전 대표는 2000년 원주로 이전을 결심했다. “원주만 들어와도 교통이 좋아서 서울·경기는 충분히 공략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이전 후 영업권역은 수도권으로 확장됐고, 우수 인재 채용의 기회도 넓어졌다. 2002년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 현재의 공장을 준공했다.
■목련표 부산어묵에서 ‘목련어묵’으로=2000년대 초반까지 어묵 업계의 불문율은 하나였다. ‘어묵은 부산어묵이어야 팔린다.’ 전국 어묵 공장 100여곳이 너도나도 ‘~표 부산어묵’을 내걸었다. 상표만 60~70개에 달했고, 서울식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장에서는 “강원도에서 만든 거 아니냐, 왜 이렇게 비싸냐”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전환점은 2017년 강원경제진흥원의 브랜딩 지원 사업이었다. 컨설팅 업체가 처음 제안한 이름은 ‘맛있는 어묵’이었지만, 이사는 모두 거절했다. 답은 내부에 있었다. 경제진흥원 관계자가 “서울식품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이 뭔가요?”라고 물었고, 창립 초기부터 공장 이름으로 써 온 ‘목련’이 떠올랐다. 서울식품이 한 거래처에서 ‘목련 어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목련어묵’이 탄생했다. “겨울을 이기고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의 생명력”이 지금 이 브랜드의 정신이다. 2023년 ‘국내 최대 꼬치어묵 생산기업’ 인증을 받으며 강원 향토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코로나 위기, 꼬치어묵의 전성시대를 열다=서울식품의 대표 제품은 꼬치어묵이다. 2005년 아주머니들이 손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하루 수백 박스씩 꼬치를 손으로 꽂던 수작업에서 시작해, 2015년 자동화 기계 2대를 도입했고 현재는 6대의 설비를 가동 중이다. 성수기 기준 하루 12만개를 생산하며, 2015년 자동화 이후 지금까지 생산한 꼬치어묵만 2억2,000만개에 달한다. 꼬치를 줄로 이으면 지구 두 바퀴를 넘는 물량이다. 꼬치어묵 관련 특허도 2종을 보유하고 있다.
꼬치어묵 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역설적으로 코로나19였다. 2020년 초 공장을 3개월간 세우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해 겨울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포장마차가 자취를 감추고 프랜차이즈·밀키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위생적으로 포장된 꼬치어묵 수요가 폭발했다. 아들인 전진택 이사는 “10년 이상 명맥만 유지하다가 코로나를 기점으로 확 뛰었다”고 설명했다.
■어육 70% 고집, 원가 올라도 배합 비율은 건드리지 않는다=서울식품의 경쟁력 핵심은 원료 철학이다. 최상등급 실꼬리돔 흰 살을 70% 이상 사용하고, 밀가루 대신 국내산 쌀가루를 매년 50톤씩 쓴다. 시중 대기업 제품 상당수가 밀가루 비율이 70%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원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배합 비율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은 41년간 흔들리지 않았다. 최근 반년 사이 주원료인 생선 가격이 30%가량 오른 데다 전기세도 수년간 40~50% 인상됐다. 대기업이 “우리 가격에 맞춰 달라”며 OEM 납품을 요청해도 거절한다. 전 대표는“레시피 빼고 원가를 맞추자는 그 길을 갔으면 우리도 벌써 문 닫았을 것”이라며 “소비자와의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것, 그게 41년을 버텨온 진짜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위기를 기회로, 미국수출 1위까지=서울식품은 현재 미국·캐나다·호주·홍콩 4개국에 연간 5억원 규모로 수출하고 있다. 2017년 원주시 수출협회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해외 영업을 시작했고, 2019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수출국을 넓혀갔다.
올해는 미국 수출이 역대 최대를 경신할 전망이다.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미국 해양포유류보호법(MMPA) 강화 조치로, 허가된 어획 방법으로 잡은 생선으로 만든 제품만 미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어묵 공장 대부분이 적합 서류 마련에 혼란을 겪는 가운데, 서울식품은 지난 2월 국내 어묵 공장 1호로 이 서류를 발급받았다. 프리미엄 연육으로 써온 태국산 FA 연육이 이미 해당 요건을 갖춘 원료였기 때문이다. 이사는 “프리미엄 원료를 고집해 온 것이 결국 위기를 기회로 바꿔줬다”고 말했다. 3월까지 사실상 독점 납품에 가까운 수혜를 누렸고, 이후 미국 거래처가 계속 늘고 있다. 올해 6월까지 미국 수출 확정 발주량(80톤)은 이미 지난해 미국 수출 물량(80톤)과 같다. 올해 전체 수출 목표는 8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50%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온라인·신제품·나눔으로 백년기업 기반 다진다=서울식품의 또 다른 성장 축은 온라인이다. 2022년 자사몰을 열고 2024년 콘텐츠 PD를 채용해 이사·PD·온라인 담당·마케팅 담당 4인 팀을 꾸렸다. 2024년 온라인 매출 10억원을 달성했고, 그해 12월에는 월 매출 2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이사는 “40년 사업 역사상 한 거래처에서 가져간 가장 큰 금액이 온라인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매년 40~50%씩 성장 중이며 올해 상반기도 전년 대비 40%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신제품으로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원을 받아 삼양식품 ‘불닭’ 소스를 접목한 K-어묵바를 전국 최초로 개발 중이며, 올해 8~9월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 상생 활동도 꾸준하다. 2021년 2월부터 원주시 태장동 저소득 계층 35가구에 매달 빠짐없이 직접 만든 반찬을 배달하는 ‘목련어묵 가족봉사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업 승계·소통 경영으로 지속 가능한 기업 바란다=서울식품은 전영철 대표와 2010년 합류한 아들 전진택 이사가 함께하는 2세 경영 체제로 운영 중이다. 전 대표는 아들이 합류한 지 2년 만에 거의 모든 경영 결정권을 이사에게 넘겼다.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자기가 책임지며 겪어야 커가는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 결과 아버지가 도내 영업에 집중했던 것에서, 이사 부임 이후 전국과 해외로 사업이 급속히 확장됐다.
회사 내부 문화도 바뀌었다. 2023년 전 직원이 함께 비전을 수립하고 매년 소통하는 ‘살아있는 비전’ 체계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가장 애정하는 복지인 소규모 회식 지원 제도 ‘시크릿 목련’, 내일채움공제 가입, 장기근속 포상 등도 갖췄다. 전 대표는 “위기 때일수록 숨기지 않고 직원들에게 모든 정보를 솔직하게 공유한다. 격식 없는 소통의 문화가 40년을 지탱해온 진정한 힘”이라고 했다.
전영철 ㈜서울식품 목련어묵 대표는 “강원도에서 가업 승계가 가장 잘 된 기업으로 남고 싶다”며 “소비자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회사, 강원의 맛을 세계로 알리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주=장소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