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주요 시중은행에서 중소기업들의 대출 연체율이 크게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부실채권 역시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누리고 있는 반면, 상당수 중소기업은 은행 빚조차 갚기 벅찬 상황에 놓여 대조되는 모습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기름값 상승과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환율, 여기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의 양극화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금과 이자가 밀린 비율) 평균은 0.51%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월 말(0.46%) 대비 0.05%포인트(p), 지난해 말(0.37%) 대비 0.14%p 오른 수치다.
누가 대출을 받았는지에 따라 체감 온도는 크게 달랐다. 특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포함된 중소기업의 연체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중소기업 연체율 평균은 0.73%까지 치솟아, 관련 통계를 모으기 시작한 2020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해 말 0.50%였던 중소기업 연체율은 4월 말 0.65%로 뛰더니, 5월 한 달 새 0.08%p가 더 오르며 상승속도가 빨라졌다.
반면 대기업 연체율은 지난해 말 0.03%에서 지난달 말 0.09%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고, 일반 가계 연체율 역시 0.30%에서 0.35%로 비교적 완만하게 상승했다.
중소기업의 부실채권 규모도 급격히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전체 대출 중 3개월 이상 연체돼 사실상 은행이 돌려받기 어려운 부실 대출을 뜻하는 ‘고정이하여신(NPL)’ 비율 평균은 0.44%였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68%로 역시 202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대기업(0.30%)이나 가계(0.27%)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 달 전과 비교해도 중소기업의 부실 비율은 0.05%p 올랐지만, 대기업은 오히려 0.01%p 떨어져 기업 규모에 따른 재정 건전성 격차가 더 벌어졌다.
개별 은행별 통계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한층 뚜렷해진다.
A 은행의 경우 지난달 말 중소기업 연체율이 0.78%를 기록해, 2016년 6월(0.85%) 이후 약 10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하지만 이 은행의 대기업 연체율은 0.03%에 불과했다. 지난달 말 중소기업의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0.70%로 5년 만에 가장 높았던 반면, 대기업(0.28%)은 안정적이었다.
A 은행 관계자는 “중동 전쟁발 고유가와 고금리 장기화로 원리금 상환 능력이 취약한 중소법인과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B 은행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달 말 중소기업 연체율이 0.86%까지 치솟으며 9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기업 연체율은 0.05%에 머물렀다. 중소기업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76%로 8년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었지만 대기업은 0.24%에 그쳤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특히 부동산업, 임대업, 서비스업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대내외 불안 요소가 지속됨에 따라 양극화는 심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소기업의 연체율과 부실 대출 비율이 유독 급등한 배경에는 훌쩍 뛰어오른 대출 이자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예고가 있자마자, 시장금리가 이를 선반영하고 대출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는 연쇄 작용이 일어났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4월 말보다 13.6bp(1bp=0.01%p) 오른 3.731%에 달했다. 10년물 금리는 14.5bp 오른 4.068%, 30년물 금리는 21.6bp 오른 4.006% 등으로 장기 국고채의 금리 상승 폭은 더 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자율 상승이 중소기업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한다. 대기업은 회사에 쌓아둔 돈(내부 유보금)을 쓰거나 기업 이름으로 채권(회사채)을 발행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철저히 은행 대출에 기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 비중이 변동금리 대출”이라며 “금리 상승시 즉각 영향을 받아 건전성 측면에서 더욱 취약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호황의 ‘낙수효과’가 경제 전반으로 미처 확산하지 못하는 가운데 본격적인 금리 상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더 벌려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금리가 상승하면 한계기업과 취약차주에 더 큰 부담이 된다”며 “내수 둔화나 연체율 상승 압력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파산 등이 늘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