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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초점] 춘천시와 호후시의 반세기 우정을 회고하며

류종수 전 춘천시장

◇류종수 제32대 춘천시장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한일 관계는 오랜 세월 격랑과 평온을 오가며,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연결의 끈을 견고히 유지해왔다.

20년 만에 다시 방문한 일본 호후시에는 봄날의 온기가 가득했다. 시민들의 정중한 환대엔 세월의 무게가 녹아있었고, 희미해진 기억 속 50년 우정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춘천시와 호후시가 교류를 시작한 지 올해로 반세기가 흘렀다. 사바강 하구에 위치한 호후시는 야마구치현 최대의 평야를 품은 도시다. 인구 12만의 소박한 이 도시는 시모노세키시와 히로시마시 사이에 자리하여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번영해 왔다. 자연과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의 모습은 마치 춘천과 많이 닮아있었다. 예스러운 거리에서 흘러간 세월과 변치 않는 우정의 가치가 다시 느껴졌다.

두 도시의 인연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회 춘천시-호후시 육상교환경기대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1991년 10월, 두 도시는 정식으로 자매도시의 연을 맺었다. 체육과 문화예술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다.

그러던 2005년,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강원도는 돗토리현과, 춘천시는 호후시 및 가가미가하라시와 교류 중단을 선언했다. 양 국가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으며 지방 교류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수십 년간 가꾸어온 우정의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해 11월, 교류 30주년을 맞아 202명의 춘천시 방문단과 함께 호후시를 방문했다. 당시 마쓰우라 마사토 호후시장과 맺은 백년지우(百年之友) 맹세는 수많은 정치적 파고를 넘어선 숭고한 우정의 상징으로 여전히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2008년 이후 일본 교과서의 독도 표기 문제로 교류는 다시 경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 속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교류는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어졌고, 특히 춘천예총과 한일친선협회의 합동 미술전시회는 양 도시 간 우정의 끈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리가 됐다.

이번 호후시 방문은 시장 재직시절 미완의 소명을 이루기에 충분했다. 20년 전 호후시 방문 당시 故 고토구미치야 전 한일친선협회 회장에게 선물받아 소중히 간직해온 넥타이를 고인의 아들인 고도쿠 신야 현 한일친선협회 회장에게 전달했다. 양 도시 역사의 한 장면에 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현 양 도시 시장들의 인연은 마치 오랜 동화 같았다. 이케다 유타카 호후시장은 50년 전 첫 교류의 시작점이 된 한일 육상교환경기대회에 직접 선수로 뛰었던 추억을 나누었고, 육동한 춘천시장도 고등학교 시절 강원일보에서 그 대회 개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반세기 전 두 사람의 추억이 시장이 된 현재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춘천시와 호후시의 반세기 우정은 이제 미래세대로 그 날개를 펼치려 한다. 호후시 어린이 문화제, 춘천 국제 어린이 그림 교류전, 마라톤 대회, 유소년 축구 교류는 닫혔던 문을 다시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며 차세대 리더로 성장할 것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서 우리나라 이상화 선수와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보여준 진정한 우정은 전 세계의 마음을 울렸다. 진정한 교류의 본질이 정치적 계산이 아닌 인간 본연의 진정성에서 비롯됨을 가슴 깊이 새겨주었다. 이젠 과거의 아픔과 갈등을 이해와 화해의 정신으로 극복하고, 양 도시의 인연이 더욱 찬란히 꽃피우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뜻깊은 방문을 제안해 주신 육동한 시장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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