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평사로 드는 길, 가장 먼저 귀에 닿는 건 물소리다. 춘천 의암호에서 배를 타고 내리면, 강물의 끝자락에 계곡이 들어서고, 계곡은 다시 숲길을 품는다. 아홉 번 굽이도는 계곡을 따라 걷는 동안, 주위는 어느새 조용해진다. 그렇게 산과 산 사이, 나무 그림자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열린 길을 지나면, 고요하게 다듬어진 돌담과 단정한 기와지붕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문턱, 한 걸음 앞에서 문득 시선이 멈춘다. 보물인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한눈에 보기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문이지만 불교의 순환과 비움, 다시 들어섬의 의미를 품고 있다. 청평사 회전문을 제대로 톺아보려면, 먼저 청평사의 시간을 읽어야 한다.
청평사의 시작은 고려 광종 24년(973년), 영현선사(永玄禪師)가 창건한 백암선원이었다. 이후 춘주도 감찰사 이의에 의해 ‘보현원’, 이자현에 의해 ‘문수원’이라는 이름으로 중창과 삼창을 겪는다. 가장 큰 전환점은 고려 선종 때였다. 문신이자 학자였던 이자현(李資玄·1061~1125년)이 문수보살 신앙을 바탕으로 청평사를 대대적으로 가꾸며, 단순한 산사가 아닌 귀족적 정원 공간이자 불교 수행의 도량으로 변신시켰다. 그가 조성한 연못 ‘영지’와 정자, 계곡을 따라 놓인 암자들은 지금도 청평사 안팎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무려 37년을 이곳에 머물렀다. 한 사람의 시간이 한 사찰의 성격을 바꾸는 데 충분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조선 명종 5년(1550년), 불교 억압 속에서도 사찰 재건에 나섰던 보우선사(普雨禪師·1515~1565년)가 이 절을 다시 일으켰고, 이때부터 ‘청평사’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같은 해, 회전문도 세워졌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만 보면 단출한 목조건축이다. 어찌 보면 문보다는 통로의 외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문이 들어선 것은 단순한 기능 때문이 아니었다. 이 문은 단절된 시대의 단층 위에 새로 올려진 불심의 흐름이었다.

청평사 회전문은 말 그대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은 아니다. 이 문에서 말하는 ‘회전’은 눈에 보이는 회전이 아니라, 마음이 조용히 돌아 나오는 여정에 가깝다. 불교에서 회전은 윤회와 해탈, 순환의 상징이다. 문 하나를 돌며 속세를 지나고, 다시 텅 빈 마음으로 들어가는 그 길 위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비워낸다. 실제로 문을 드나들던 행위 자체가 수행의 일부였던 셈이다. 문 안에서 극락보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 한 줄기 축선만으로도 이 문이 품은 건축적 의미는 분명해진다. 경계는 낮고 단정하다. 기단은 낮게 깔리고, 긴 처마는 몸을 낮추게 한다. 다포식 공포(전통 목조 건축 양식)는 절제돼 있고, 단청은 화려함보다 사색을 닮았다. 중심기둥의 침묵은 되레 이 문이 견뎌온 시간을 말해준다.
회전문 사각의 문틈 사이로 계절이 바뀐다.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산을 감싸고, 겨울이면 처마 끝마다 고요한 눈발이 내려앉는다. 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한 폭의 그림처럼 정중동(靜中動)이다. 여름에는 산빛이 진하게 살아나고, 겨울엔 지붕마다 눈이 내려 어느새, 차분한 흑백의 풍경이 된다. 하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한결같은 건 이 문턱에 서면 마음이 잠시 멈춘다는 사실이다. 문은 그저 풍경을 캔버스처럼 감싸고 있을 뿐인데, 그 안에서 사람의 감각은 조용히 사그라든다. 문을 등지고 들어설 때와 문을 향해 돌아설 때 보이는 세상이 다르게 느껴진다. 회전문은 안과 밖을 나누기보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삶의 속도를 되묻는 창(窓)이다.
청평사 회전문은 1930년대부터 수차례 보수를 거쳤고, 1980년대에는 해체와 복원까지 이뤄졌다. 수없이 다시 세워졌지만, 조선 명종기의 원형은 그대로 남았다. 사찰에 문을 세운다는 건 경계를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흐리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회전문은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 들어가는 문인 동시에 돌아보는 문, 통과의례인 동시에 명상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앞에 서면, 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고요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발자취를 한 번쯤 되짚게 된다. 문은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지만, 마음은 그 앞에서 깨달음을 품고 조용히 돌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