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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단정한 자세 사실적 옷주름 이상적 사실주의 조각의 美

96. 영동지역 통일신라 불상

◇태백산 망경대에서 출토된 약사불(통일신라).

신라 시대 명주는 일찍이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신라 사람들의 이상향이었으며, 화랑들은 이를 실현하고자 동해안을 따라 순례길에 올랐다.

태백산 망경대에서 발견된 금동약사불상은 8세기 통일신라의 선진 문물이 교류하던 이곳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대좌와 불신의 자연스러운 비례와 둥글고 세련된 얼굴, 약그릇을 들고 있는 단정한 자세와 신체에 밀착된 사실적인 옷주름 등에서 8세기 통일신라의 이상적 사실주의 조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명주는 김주원 세력의 막강한 후원 아래 경주 못지않은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태종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강릉으로 은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됐다.

당시 이 지역 문화를 대변하는 강릉 한송사터에서 발견된 금동불은 대의 끝자락이 아래쪽으로 날카롭게 마무리되는 등 9세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불상 뒷면은 전신에 걸쳐 주조 구멍이 크게 뚫려 있어 완전한 편불이 되기 전 단계의 모습을 보이며, 옷주름은 주조 후 선으로 새겨 넣었다.

이것은 신라 하대로 내려가면서 주조 기술이 쇠퇴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수도 경주의 불상들도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설악산에 자리 잡고 있는 진전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시원을 이룬 성지다.

진전사 삼층석탑 동남쪽 60㎝ 지점에서 발견된 금동불상은 커다란 손을 아래 위로 넓게 벌려 시무외여원인의 손갖춤을 하고 있다.

다소 늘어진 선각으로 된 옷주름 표현이나 대의 끝자락의 모습 등 9세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는 불상이다.

진전사 터 발굴품들은 고려 시대 것이 대부분인 데 비해 이 불상은 9세기 도의선사의 창건 때와 가까운 시기의 것으로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 도의선사탑 등으로 추정되는 승탑과 더불어 진전사 창건 시의 모습과 위상을 전하고 있다.

김대호기자 mantough@kwnews.co.kr·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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