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한 과제를 앞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 1948년 설립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는 친일 행적을 철저히 조사하고 단죄하려는 시도로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극심한 정치적 반발과 권력의 방해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채 해체됐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남기게 됐다.
이제 우리는 반민특위의 실패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인해 헌정사의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그러나 탄핵 절차는 지지부진하고, 이제와서 마치 민주투사라도 된 양 합의와 균형을 부르짖는 한심한 정치인들의 작태는 국민의 정의감과 법치주의를 대놓고 훼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과거 반민특위의 실패와 유사한 구조적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반민특위의 좌절은 단순히 친일파 청산의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후유증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불평등과 부패 구조를 남겼고, 이는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제 강점기 부역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며 한국 사회의 지배층으로 자리잡았고, 이는 정의와 법치가 무시되는 풍토를 조성했다.
오늘날의 탄핵 정국에서 법치와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우리는 민주주의의 지체를 경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탄핵 절차가 지연 된다면, 이는 단순히 대통령 한 명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 선배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함 자체를 뒤흔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반민특위의 교훈은 우리가 현재 상황에서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단연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될 수 없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에 협력한 비시(vichy) 정권 인사들을 단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실현했다. 이를 통해 프랑스는 자신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헌신을 증명했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데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법치와 정의를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반면, 스페인은 민주화 과정에서 프랑코 정권의 책임을 묻지 않는 이른바 ‘망각의 협약’을 통해 단기적 안정을 꾀하려는 실수를 범했다.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이 조치로 인해 장기적인 사회적 갈등이 초래됐고, 이는 엄청난 청구서로 되돌아왔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문제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정치적 갈등을 단순히 덮으려 한다면, 이는 오히려 장기적 불신과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와 같이 철저하고 공정한 단죄를 통해 정의를 바로세우고 국민적 화합을 이루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통령 탄핵 정국은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역사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반민특위의 실패와 프랑스의 성공 사례를 동시에 기억하면서, 공정하고 철저한 절차를 통해 법치와 정의를 세워야 한다. 위정자들은 국민의 반대편이 아닌 그들의 바로 옆에 서서 연대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헌법 수호자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정의를 외면하고 국민을 배신한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기회를 주는 역사적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탄핵 정국의 종결은 법치와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단죄’를 행하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