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지난달 14일 청주에서 퇴근길에 실종됐던 50대 여성은 다른 남성을 만난다는 사실 등에 격분한 전 연인 김모(50대)씨가 흉기로 10여차례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충북경찰청은 27일 오후 8시께 음성군 모 폐기물업체에서 50대 여성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실종 44일 만이다.
진천군에서 폐기물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김씨는 살해한 A씨 시신을 마대에 넣은 뒤 자신의 거래처인 음성군의 한 육가공업체 내 4m 깊이의 폐수처리조 안에 밧줄로 묶어 고정해 은닉했다. 당초 시신 유기 장소는 폐기물처리업체로 알려졌으나, 확인 결과 육가공업체로 파악됐다.
또 김씨는 범행 흔적이 남아 있는 A씨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청주와 진천 등 2곳 이상의 다른 거래처에 옮겨 놓은 뒤 천막으로 덮어 숨겼던 사실도 드러났다. 거래처 업주들에게는 "자녀가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서 빼앗았다. 잠시 맡아달라"고 둘러댄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이후 SUV 은닉 과정에서 자신을 추적해온 경찰에 꼬리가 밟혔고, 지난 24일 차량을 몰아 충주시 소재 충주호로 접근하는 것이 포착되면서 경찰에 폭행치사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그가 충주호에 유기한 SUV는 지난 26일 인양됐다. 경찰은 인양된 SUV 내부에서 다수의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긴급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애초 "폭행은 했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잡아뗐던 김씨가 범행 일체를 모두 자백함에 따라 그의 죄명을 폭행치사에서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변경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이날 오전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예정됐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포기했다.
김씨가 이날 청주지검에 영장실질심사 포기서를 제출함에 따라 법원은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 기록과 증거만으로 구속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영장 발부 여부는 이날 늦은 오후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충북경찰청은 이날 중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살인, 사체유기 혐의를 받는 김씨를 상대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이코패스 진단검사는 냉담함, 충동성, 공감 부족, 무책임 등 사이코패스의 성격적 특성을 지수화하는 검사다.
모두 20문항으로 이뤄졌으며 40점이 '만점'이다. 국내에서는 통상 25점을 넘기면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경찰은 김씨의 범행 수법과 이후 행적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경찰의 부실한 초동 수사로 자칫 미제로 남을 뻔했다.
경찰은 김씨가 실종자의 전 연인으로, 해를 가했을 수 있다는 유족들의 초기 진술을 확보하고도, 정작 김씨를 불러 조사한 것은 실종 3주가 지나서였다.
게다가 사건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린 시점에는 도로 CCTV 영상 보관기한이 이미 만료돼 핵심단서가 될 실종자 차량의 행적이 미궁에 빠지기도 했다.
경찰에 A씨의 실종 신고가 처음 접수된 건 지난달 16일이었다. 당시 A씨의 자녀는 "혼자 사는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신고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오후 6시 10분께 청주 옥산면의 회사에서 SUV를 몰고 퇴근한 뒤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차량은 실종 당일 밤 11시 30분께 진천군 모처에서 행적이 끊겼고, 휴대전화도 꺼진 상태였다.
A씨 가족들은 초기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전 연인 김씨와 자주 다퉜다. 김씨가 해를 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가 극단 선택을 했을 만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A씨의 실종 사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범행 가능성을 우려한 김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건 실종신고가 접수된 지 무려 3주나 지난 뒤였다.
김씨는 실종 당일 A씨 주변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없었다.
그는 당일 저녁 자신이 운영하는 진천 소재 폐기물 업체에서 퇴근한 뒤 이튿날 오전 5시가 넘어서야 귀가했고, 10분 만에 다시 집을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미심쩍은 행적에 대해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경찰은 뒤늦게 김씨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을 했고, 그 결과 사전에 도로 CCTV 위치를 검색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경찰은 A씨가 실종된 지 약 한 달 만에 부랴부랴 전담수사팀을 꾸렸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A씨 차량의 동선을 추적했지만, 너무 지체한 탓에 일대 도로 CCTV 등의 영상보관 기한이 만료된 것이었다.
결국 수사팀은 확보할 수 있는 일대 도로 CCTV 영상을 모두 분석해 A씨 차량과 같은 차종의 SUV를 걸러내고, 그 행적을 좇았다.
이를 통해 실종 이튿날인 15일 오전 3시 30분께 청주 외하동의 한 도로에서 A씨 차량의 모습을 추가로 포착했지만 더 이상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자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 사건이 미제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의 행적에 의문점이 많았지만, 무작정 검거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A씨 차량의 행적도 묘연하고, 범죄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김씨를 검거했다간 금새 풀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색 범위를 확대하면서 경찰 수사에 활기가 띠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김씨 거래처인 진천의 한 업체에서 무려 실종 40일 만에 문제의 SUV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이 차량을 은닉한 것으로 보고 추적에 나섰고, 이틀 뒤인 26일 김씨가 SUV를 몰고 이동하는 장면을 포착해 당일 그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SUV 내에서 혈흔과 인체조직이 발견된 점을 토대로 김씨를 추궁했고, 그는 결국 범행 일체를 시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