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는 계약이나 조직에서 주도권을 가진 이른바 ‘갑’과 상대적으로 종속된 ‘을’의 관계를 뜻한다. 계약서 표기 관행에서 유래했다. 법적으로 갑이 우위라거나 을이 열위하다는 의미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계약에서 자본을 가진 회사나 고용주가 갑이 된다. 반면 노동자나 하청업체 등이 을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힘의 차이가 생기는 구조를 갑·을관계라 표현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갑이 힘을 가진 자-을이 약자라는 의미가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이뤄진 가운데 대기업은 하청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띤다. 서비스 산업이 확대되는 2000년대 후반에는 고객이 갑이 되고 직원이 을이 되는 구조에서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갑질사건은 대기업 항공사 오너일가 한 임원의 ‘땅콩회항’이 아닐까 한다. 해당 임원은 2014년 12월 항공기에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훈계하다 활주로를 향하던 비행기를 다시 게이트로 되돌리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그 임원은 업무방해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당시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잊힐 만하면 다시 고개를 드는 갑질사건이 요즘 양양에서 발생해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양양군청 공무원 A씨는 군청 환경미화원들에게 이른바 ‘계엄령 놀이’라며 폭행을 가했다. 피해 환경미화원들은 특정 주식 매수와 특정 색깔 속옷 착용을 강요당했다고 진술했다. 해당 공무원은 결국 구속됐다. 갑질은 인간의 기본권을 짓밟는 비인간적인 행위다. 무엇보다 공직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충격이다. 대통령실에서도 사건을 심각하게 인식했을 정도다. 공직사회 스스로 갑질직원 퇴출과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