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은 늘 국가 에너지 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도시다. 석탄으로 대한민국의 불을 밝혔고, 시멘트로 산업화의 토대를 떠받쳤다. 한 시대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도시였지만, 그 역할은 오랫동안 과거형으로만 불려왔다. 그러나 지금 삼척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에너지의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삼척에는 이미 ESS 화재안전성 검증센터가 구축돼 운영 중이다. 소형 배터리부터 전기차, 전기트럭 등 다양한 ESS를 대상으로 화재 위험성과 전기적 이상을 실제 조건에서 시험·검증할 수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인프라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미국과 유럽, 중국 시험소를 전전하며 수행해야 했던 인증 절차의 상당 부분을 이제는 삼척에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는 단순한 연구시설 구축을 넘어, 국내 ESS 산업 구조를 바꾸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삼척에서는 대용량 ESS 복합 시험·인증 플랫폼 구축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사업은 5MWh급 이상 대용량 ESS를 대상으로 전기적 안전성 시험과 화재 안전성 시험을 동일 시험장에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복합 시험·인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비와 지방비, 민자를 포함해 240억 원이 넘는 사업비가 투입되며, 국제 인증기준을 기반으로 전기·환경·기계·화재 시험을 통합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기존처럼 시험 항목별로 시험장을 이동하며 순차적으로 진행하던 방식이 아니라, 실제 운전 상태의 ESS에서 이상 발생부터 화재 대응까지를 한 번에 검증함으로써 전력 낭비와 인증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실물 규모의 안전성 평가가 가능해진다. 이는 해외 시험소 의존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기술 유출 우려를 줄이는 동시에,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된다.
이미 준공된 화재안전성 검증센터, 현재 추진 중인 소방 기자재 인증평가센터에 이어 이 실증 플랫폼까지 완성될 경우, 삼척은 소형부터 대용량 ESS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시험·실증·인증이 한곳에서 완결되는 도시로 도약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삼척은 ESS 안전성의 기준을 만들고, 인증을 완성하는 국내 ESS 인증체계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삼척시 ESS 인증체계 구축 완성’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이러한 방향성은 분명히 확인됐다. 해외 인증 의존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 부담, 기술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인증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 최적지로 삼척이 거론됐다.
ESS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 AI·데이터센터 시대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ESS 확산을 가로막아 온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안전’과 ‘신뢰’였다. 삼척이 맡고 있는 역할은 바로 이 신뢰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검증과 실증의 기반 위에 대용량 ESS 복합 시험·인증 체계를 완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2026년 공모사업으로 추진 예정인 대용량 ESS 복합 시험·인증 플랫폼 구축사업은 반드시 선정돼야 한다. 이는 특정 지역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국내 ESS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국가 에너지 전환의 안전을 담보하는 국가적 투자다.
석탄과 시멘트로 국가 경제의 안전을 지켜온 도시가 이제는 에너지 전환의 안전을 책임지는 도시로 다시 국가 앞에 서고 있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미래로 확장하는 도시, 역할을 잃은 도시가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도시가 바로 삼척이다.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삼척은 ESS 도시다. 검증과 실증, 그리고 인증이 완성되는 도시이자,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안전기지가 되는 도시다. 삼척의 다음 역할은 이미 시작됐고, 2026년 공모사업 선정은 그 흐름을 완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