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90만
기고

[정치프리즘]무가치함에 맞서는 용기

읽어주는 뉴스

◇김성완 정치평론가

한때 육식을 거부한 적이 있다. 발단은 한 해양 다큐멘터리였다. 우연히 시청한 다큐 속 영상은 바다 환경과 어업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참치 어업에 나선 원양선단이 그물에 걸린 상어와 고래를 무참히 토막 내 바다에 던지는 장면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상했다. 그때부터 입안에서 뭔가 비릿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괜찮겠거니 여겼지만 이를 닦고 가글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나는 ‘앞으로 육식을 하지 않겠노라’고 가족 앞에서 선언하고야 말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집에선 채식이 가능했지만 문밖을 나서면 끼니를 해결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망치를 들면 온 세상이 박아야 할 못으로 보이더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안 먹겠다고 결심하니 온통 먹을 수 없는 음식만 눈에 들어왔다. 김밥집에서 햄과 달걀을 빼달라고 부탁했다가 눈칫밥을 배 터지게 먹었고, 기껏 비싼 찌개를 주문해놓고는 맨밥만 깨작이다 식당을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하루하루 먹는 즐거움이 사라져 갔다. 결국 어설픈 채식주의자는 채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투항했다. 나는 다시 비릿한 육식의 세계로 회귀했다.

‘이란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빈곤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전한 유엔개발계획(UNDP)의 경고를 접한 순간, 뭔가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이 발동했다. 바로 그 비린내였다. 하지만 몇 년 전 다큐를 본 뒤 느낀 육식의 비린내와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야릇한 기름 냄새와 축사에서 풍겨오는 불쾌한 악취가 뒤섞인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전쟁으로 막혀버린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다. 에너지의 목구멍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원유 가격뿐 아니라 현대 농업의 핵심인 질소비료 생산까지 연쇄적으로 흔들기 때문이다. 생산 차질이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기아를 심화시키는 다단계 공식인데,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굶주림 사이에는 ‘축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의 육류 소비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0년대 이후 늘어난 고기 소비량은 무려 6배. 가축 사육 두수도 증가해 지구상에서 사육되는 가축은 어림잡아 320억 마리, 전 세계 인구보다 4배 많다. 먹어치우는 곡물의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사라지는 곡물만 대략 300만 톤, 1년이면 11억 톤 수준이다. 연간 세계 곡물 생산량의 40%에 육박하는 곡물을 가축이 대신 먹고 있는 셈이다. 길어지고 있는 무의미한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피할 수 없는 결과라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인류가 육식을 지속하기 위해 사료로 쓰는 곡물은 세계 곳곳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6억7천만 명을 37년 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식량이기도 하다. 인류는 고기 단백질에 탐닉하기 위해 이토록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육식 문화를 초월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원상태로 돌리고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징표이자 혁명적인 행동이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비릿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과 동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계 복원을 꿈꾼 리프킨의 예측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을 통해 보듯 세상은 더 나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패권 전쟁과 오르는 기름값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기력해지지 말자. 우리 스스로 만든 ‘무가치함’에 맞서 싸우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다시 햄과 달걀을 뺀 김밥을 주문해야 할까. 나부터 무가치한 전쟁에 맞서는 새로운 도전을 고민 중이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