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불 대응은 더 이상 시민의 911 신고만 기다리지 않는다. 산등성이와 통신탑, 해안 고지대, 산림과 도시가 맞닿은 경계 지역에 설치된 카메라가 24시간 숲과 마을을 비추고, 인공지능(AI)은 화면 속 작은 연기와 이상 징후를 먼저 골라낸다. 사람이 보기 어려운 계곡과 능선, 야간 산림까지 감시망에 들어오면서 산불 대응은 ‘불이 난 뒤 달려가는 방식’에서 ‘불이 커지기 전 먼저 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 캘리포니아 전역 비추는 1,250개의 ‘눈’=5월28일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UC 샌디에이고(UC San Diego)의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s ALERTCalifornia 연구실. 캘리포니아 전역의 산과 해안, 도시 외곽을 비추는 카메라 영상이 대형 화면에 실시간으로 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팔코 쿠에스터(Falko Kuester) 교수는 “ALERTCalifornia는 극한 재난에 어떻게 대비하고, 대응하고, 복구할 것인지를 다루는 시스템”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 인식, 즉 ‘situational awareness’”라고 말했다.
UC 샌디에이고가 운영하는 ALERTCalifornia는 캘리포니아 전역을 대상으로 한 공공안전 데이터 플랫폼이다. 현재 캘리포니아 곳곳에는 1,250대가 넘는 고화질 카메라가 배치돼 있다. 카메라는 360도 회전하며 산림과 도시 외곽, 해안 고지대 등 산불 취약 지역을 실시간으로 살핀다. 쿠에스터 교수는 “카메라들은 360도로 움직이며 최대 160.9㎞ 안팎의 넓은 경관을 볼 수 있다”며 “캘리포니아 전역의 큰 풍경에서 계속 정보를 얻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카메라만 많다고 산불 대응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쏟아지는 데이터를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AI가 들어온다. ALERTCalifornia의 카메라는 1분에 8,000장 안팎의 이미지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AI는 이 방대한 이미지 속에서 평소와 다른 연기, 불빛, 움직임, 색 변화 등을 찾아낸다. 사람이 1,250대가 넘는 카메라 영상을 일일이 확인하는 대신, AI가 먼저 이상 징후를 걸러낸다.
■ 연구진이 찾고 CAL FIRE가 판단=실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매년 9,000건 안팎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대형 산불로 번지기 전 초기에 진압된다. ALERTCalifornia 네트워크를 통해 911 신고가 들어오기 전 발견돼 대응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형 산불은 언론에 보도되지만, 조기에 꺼진 불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불’들이 이 감시망의 성과인 셈이다.
이 같은 체계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대학 연구기관과 현장 소방조직의 긴밀한 협력이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전역 22개 산림화재보호국(CAL FIRE) 관할 조직과 직접 소통하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ALERTCalifornia가 연기나 이상 신호를 포착하면 위치 정보와 실시간 영상, 주변 지형 정보가 CAL FIRE 측에 전달된다. 이후 CAL FIRE는 실제 산불 여부와 통제 소각, 기신고 화재 여부 등을 확인한다.
■ 연기 감지 넘어 확산 가능성까지 분석=ALERTCalifornia의 AI는 연기 감지를 시작으로 산불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단계적으로 묶어낸다. 이상 신호가 잡히면 해당 지점이 지도 위에 표시된다. 해당 장면을 포착한 카메라와 촬영 방향, 인근 추가 확인 카메라 정보도 함께 연결된다.
한 카메라가 산등성이 위 연기를 포착하면 인근 카메라를 돌려 같은 지점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필요하면 화면을 확대해 연기의 성격도 확인한다. 실제 산불인지, 통제된 소각인지, 차량 화재인지, 구조물 화재인지 구분하는 데 필요한 기초 정보가 이 과정에서 확보된다. 신고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영상과 위치, 지형 자료를 함께 놓고 판단하는 구조다.
연구실 대형 화면에는 이 과정이 한눈에 펼쳐졌다. 캘리포니아 전역 지도 위에는 감시 카메라 위치와 과거 화재 구역이 표시됐고, 옆 화면에는 산림과 호수, 계곡, 능선을 비추는 실시간 영상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송출됐다. 특정 지역을 선택하면 해당 지점을 바라보는 카메라와 주변 도로, 지형, 과거 산불 이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 과거·현재·미래를 한 화면에=쿠에스터 교수가 강조한 대목은 ‘시간의 연결’이었다. ALERTCalifornia는 과거 어느 지점에서 불이 시작돼 어떤 능선과 계곡을 타고 번졌는지, 현재 어느 카메라가 이상 신호를 잡았는지, 앞으로 바람과 지형을 따라 어느 방향으로 확산할 수 있는지 등을 함께 분석한다.
이 분석의 중심에는 3D 디지털 트윈이 있다. 연구실 모니터에는 요세미티 계곡과 같은 산악 지형이 입체적으로 구현돼 있었다. 평면 지도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능선의 높낮이, 계곡의 방향, 숲과 도로, 주택가의 위치가 3D 화면에 나타났다. 산불 현장에서는 몇 m의 고도 차이와 능선 방향이 진화 전략을 바꾼다.
라이다(LiDAR)와 드론 자료도 여기에 결합된다. 라이다는 산림을 입체적으로 스캔해 나무의 높이와 밀도, 지형의 굴곡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병든 나무와 마른 식생은 불이 붙었을 때 확산 속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이 정보는 산불 위험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같은 연기라도 주변 숲이 건강한지, 마른 연료가 쌓여 있는지, 바람을 타면 어느 능선을 넘을 수 있는지에 따라 위험도는 달라진다. ALERTCalifornia는 실시간 영상에 지형과 식생, 과거 화재 이력, 기상 조건을 결합해 산불의 규모와 확산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 피해 규모·원인 조사·복구 계획까지 데이터화=피해 규모 산정에도 같은 기술이 쓰인다. 산불 발생 전 구축한 3D 자료와 산불 이후 다시 촬영한 자료를 비교하면 불탄 구역과 남아 있는 시설을 구분할 수 있다. 불탄 주택과 도로, 산림 훼손 범위, 식생 변화, 피해 집중 지형까지 입체적으로 분석된다. 피해 면적 집계에 머물지 않고 피해 확대 원인과 취약 구조물, 복구 우선순위까지 판단할 수 있다.
산불 원인 조사에도 활용된다. 불이 처음 시작된 지점과 확산 경로, 시간대별 변화가 과거 영상과 지형 자료, 사후 3D 기록으로 남는다. 산불 전후의 변화를 비교하면 어느 능선이 확산 통로가 됐는지, 어느 도로와 주택가가 먼저 위협받았는지 되짚을 수 있다.
공개성도 ALERTCalifornia의 특징이다. 연구실 모니터에 표시된 카메라 화면은 내부 관계자만 보는 폐쇄망이 아니다. 일반 시민 누구나 공개 카메라 사이트에 접속하면 캘리포니아 전역에 설치된 카메라 위치와 각 지점의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화면에는 캘리포니아 지도 위로 카메라 위치가 표시되고, 옆에는 산림과 계곡, 도시 외곽을 비추는 영상들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송출되고 있다. 공개 카메라 피드는 24시간, 주 7일 제공된다.
■강원 동해안도 ‘공동 상황인식’ 구축해야=쿠에스터 교수는 조기 감시망을 산불을 모두 막는 장비가 아니라 현장 판단 시간을 벌어주는 체계로 설명했다.
강원 동해안도 캘리포니아와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산과 마을, 도로와 해안 생활권이 가까운 데다 양간지풍을 탄 불길이 능선을 넘으면 주택가와 관광지, 산업시설까지 곧바로 위협받는다. 감시카메라가 연기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형, 식생, 바람길, 도로와 마을 위치까지 함께 보여주는 통합 정보 체계로 필요한 이유다.
결국 핵심은 장비의 숫자와 데이터의 연결이다. 산림청, 소방, 지자체, 경찰, 군, 기상청 등 연관 기관이 같은 정보를 같은 시간에 공유해야 초기 진화와 주민 대피 판단도 빨라질 수 있다.
쿠에스터 교수는 조기 감시망이 모든 산불을 막을 수 있는 만능 해법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강풍과 고온, 동시다발 화재가 겹치면 현장에서도 불길을 완전히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을 통제할 수 없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며 “상황 인식은 소방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 대피 등 공공 대응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 기획기사는 2026년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언론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미국 샌디에이고=이동수기자 messi@kwnews.co.kr

